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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피크닉piknic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


아재감성 보케사진으로 여는 오늘의 일기







숭례문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목요일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


70년대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건물의 어디가 70년대스러운지는 잘 모르겠다. 뷰는 70년대스러운 것 같다.

1층 바깥 테라스로 나가니 사람 사는 옆집 빨래 건조대가 적나라하게 보여서 조용히 뒤로 돌았다.

  


백색 벽에 걸레받이도 없고 조명이나 창 틀 문 손잡이도 미니멀해서

새하얀 건물이 바깥 풍경을 프레이밍하는 게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선 막연히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것만 알았고

동방에서 언니들이 피아노 칠 때 아 이게 그 사람 곡이구나 했던 게 전부다. 그의 팬이었으면 더 재밌게 봤을 텐데.




내부는 사진촬영 불가여서 인상적인 작품은 메모를 해 왔다.


<워터 스테이트 I>

천장에 설치된 300여개의 노즐이 6m 아래의 검은색 수조로 물을 분사한다.

공간에 흐르는 전자음악이 떨어진 물방울의 파문과 패턴으로 시각화된다. 

초반에는 아주 미세한 물방울이 소리없이 떨어져 퍼지는데

나중에는 음악도 절정으로 치닫고 물방울도 굵어져서 수면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청각의 시각화인 줄만 알았는데 두 감각이 뒤섞여버리는 순간이 감동적이었음. 

정교한 프로그래밍 리스펙. 한편 음악과 비라는 식상한 조합을 류이치 사카모토 브랜드에 기댔다는 생각도 들었다.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

누워서 감상하는 인스톨레이션. 천장에 빔프로젝터와 수조, 인공 안개 옥실레이터 설치하고 안개 위로 이미지를 프로젝션.

밑에 누워서 감상 중인 관람객의 신체 위로도 넘실거리는 빔 이미지가 투사됨, 밖에서 보면 한 덩어리 작품처럼 보인다.

저기 누워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는데 막상 누우니 작품을 보느라 남들 시선은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젤 신기한 점은 2차원 이미지를 안개 위로 쏘니까 안개 질감이 z축을 만들어서 이미지가 아주 다이내믹하게 보였던 거.

투영되는 이미지 자체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대신 사운드가 하드캐리한다. 안개가 뿜어지는 형태는 계속 같은데, 사운드에 따라 차디찬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보이기도, 분쟁지역의 화염과 폭발처럼 보이기도 함. 

의미 모를 지도 이미지가 나오길래 써 있는 텍스트를 받아적었다가 검색해 보니 chertovo ozero 러시아의 호수 이름...? 




아무튼 나는 공디과라서 그런가 자꾸만 프로그래밍 뭘로 어떻게 했을까 이 생각을 했다. 

기상현상을 소재로 함, 기술적 정교함, 물의 성질에 대한 탐구라는 테마가 올라퍼 엘리아슨과 비슷한가 싶지만

시각적 스펙터클 대신 음악이다. 전시공간이 넓거나 스케일이 크지 않은데도 숨 죽여 집중하게 된다.


막연하게 대림미술관(과 그 옆의 커피집)하고 비슷하려나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쾌적했다.

넓기도 넓고 무엇보다 사진 촬영이 금지여서 오로지 전시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루프탑 전망도 좋고 남산타워가 따악 보였다. 

근데 난 남의 집 옥상이라도 애매하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건 싫어서 최대한 사진에 안 나오게 노력했다.






밑에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다.

난 갈길이 멀고 자리도 없으므로 패쓰

저기 혼자 앉아있으면 기분 짱 좋겠다.




(누가 보면 여성전용인줄 알겠음...>)

아무튼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휴양지 온 느낌도 나고. 도심 속 힐링(삑 오염된 단어입니다)이랄까...



류이치 사카모토를 잘 몰랐는데 어쿠스틱부터 전자음악, 민속 악기까지 음악적 스펙트럼이 짱 넓었고

저명한 예술가로서 사회적 발언도 주저하지 않는 멋진 사람이었다.

탈원전 시위에 나가서 마이크 잡고 저도 반대합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쿨내란....

예술이 선동의 도구여서는 안 되지만, 국민 정서에 맞춰 할 말은 하는 사람이구나. 프로+일본인 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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