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구생활

홍윤주 <진짜공간> 프로파간다, 2017

1. 올 봄 도쿄에 놀러갔다가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린 안도 다다오 전시를 볼 기회가 생겼다. 도쿄 사람들의 높은 관심도와 진지하고 차분한 관람 태도가 가장 놀라웠고,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이거였다. 안도의 작업 중에는 대중에 개방되지 않은 개인 주택이 많다. 그래서인지 전시 캡션에 작품 설명만큼이나 건축주 인터뷰가 비중 있게 실려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 열대 지방 바닷가 주택 건축주의 인터뷰였다.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4분할 전면 창이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주택이었다. 건축주는 빛과 풍경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다가, “물론 창이 크기 때문에 벌레가 많이 들어오는 점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벌레도 우리의 친구라고 했다. 두뇌 풀가동 모드로 캡션을 읽다가 킥 하고 웃어버렸다. 눈앞에 있는 말간 건축 모델이 친척집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2. 그 대척점에서, 아르스에서 <포스트모던을 이끈 열 개의 규범적 건축> 했을 때 진 빠졌던 게 생각난다. 무색무취 형식주의. 스터디 끝나고 집에 오는 길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아이소메트릭을 눈 빠지게 뒤적이면서 창이 인셋인지 평활면인지 찾고 토론한다. 남들은 재밌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할 말도 별로 없고 속으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투덜댔다. 겨우 지적 우월 맛으로 버텼지만 두 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3. 드디어 책 얘기. 그래서 <진짜공간>이 내 최애다. <진짜공간> 은 사람들의 진짜 집에 대한 얘기다. 인터뷰도 사진도 현실감 넘친다. 월세가 얼마인지까지 알려 준다. 다 쓰러져가는 집부터 근사한 빌라도 있다. 사람 냄새 풀풀 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빌트인 빨래판이다. 아파트에밖에 안 살아 봐서 저런 게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 화장실 타일 옆에다 옷을 문질러 빤다니 지저분할 것 같다. 그런데 꽤 쓸 만하다고 말했던가, 그래서 더 재밌었다.


누군가는 <진짜공간>의 건축은 건축이 아니라고 할 거다. 미관을 해치는 불법 적치물이라고,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겐 엘리티시즘 오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노니컬 빌딩 얘기보다 훨씬 더 유익했다. 읽고 나니 당장, 막의자에 자작 합판을 덧붙인 공디과 목업실 의자가, 동네 집 볕 드는 곳 구석구석 잘도 끼워 넣은 식물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잘 뜯어 보면 구조적 완결성도 뛰어나고 경제적이고 귀엽다. 이런 눈을 깨우니까 내가 사는 도시에 애착이 생긴다. 책 한 권이 삶의 질을 높이는 실증적 사례. 갓갓 책!



+분노: 진짜공간을 작년 겨울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는데, 며칠 뒤 필자인 홍윤주 건축가가 바로 그전 달에 우리 학교 우리 과에서 특강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날 특강 끝나고 김상규 교수님 랩실에서 책읽기 모임중이던 우리랑 같이 점심식사까지 하고 가셨었다는 게 기억났다. 으아아악 아쉬움의 사자후 지금도 너무 아깝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짱 많고 며칠만 일찍 읽지 과거의 나새기야............ 

'탐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 더 스크랩 THE SCRAP  (0) 2018.06.09
피크닉piknic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  (0) 20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