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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2019)

6.2 세운상가 오큐파이 더 시티



이번 봄학기는 2년 전 심각하게 입은 총상을 수습하고 있다.


2016년 여름에 가요제 나간다고 영혼을 갈다가 그 해 학점까지 갈아버려서 타격이 컸다. 

F 두 개에 전필을 철회하는 바람에 칼졸업을 실패했고, 줄줄이 학석사 연계과정도 자격미달로 지원조차 못 하게 되었다. 가요제는 결국 1등은 놓쳤고 2등을 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서 후회는 없었는데 좀 아쉽긴 했다. 가요제를 하얗게 불태우고 나니까 가수 할 것도 아니면서 뭐하는 짓인지 현타 왔다. 그 길로 취미는 여기까지구나 하고 대학 공부로 환승했다. 


어제는 편집디자인 보충 수업이 있어서 강주현 선생님 작업실에 다녀왔다. 재작년의 나 같았으면 저얼대로 안 갔다. 요즘에는 주말이며 휴일에 보충수업 챙겨 주시는 교수님을 보면 감사하고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샘솟는다.


이 과목 안 듣고 졸업했으면 어쨌을까 싶다. 나는 커닝값이 뭔지도 모르는 생초짜 공디과 굴러온 돌이라 큰 기대 없이 'F를 방치하진 않았다는 거에 의의를 두자'면서 수강신청했다. 그런데 요샌 휴강하는 하루가 너무 아깝다. 매주 새로운 감각을 얻어 간다. 시디 과목이라 쫄려서 스트레스 받긴 하지만 고딴 건 문제도 아닐 만큼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굳이 토요일에 컨펌(주말에 받아봐야 인쇄소는 주말에 쉬니까 월요일 오전 수업에서 뵙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핑계로...

그냥 궁금하니까 고고! 


교수님이 적어주신 주소)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상가 마열 321호 

종로 3가역 12번출구 세운상가 경사진 입구






매체에서 선생님 인터뷰를 읽고 어떤 분위기일지 대강 눈치채고 갔는데도 신기했다.

힙하대서 가보면 젠트리피케이션에 휩쓸린 자기복제 인스타 감성에 낚이기 일쑤인데

오 아니오 저기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교수님이 바젤에서 유학할 때부터 수집해 온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 밖에서도 시선 강탈하는 선명한 별색은 우리나라 인쇄소에선 구현해 내기 어렵다고. 

보라색 여성 얼굴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호일 급으로 반짝거리는 은색 잉크로 되어 있는데 프랑스에서만 쓰는 잉크라고 한다. 더이상 구할 수 없는 귀한 포스터라고, 도슨트처럼 설명해 주셨다.


그건 그렇고 저기 처음 가 본 나는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이 말이 자꾸 떠올랐다. 

가끔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갔을 때 내가 찌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저기가 딱 그랬다.

강력하고 일관된 취향이 꽈악 틀어쥐고 있는 게 느껴진다. 에어컨 커버까지! 


교수님이 오티 날 좋아하는 한글/영문 서체는? 좋아하는 책은? 작가는? 디자이너는? 이런 걸 물어서 띠용 했던 기억이 있다. 

저길 가보니까 비로소 그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거듭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고 물어서 선호의 집적 농축 응결을 해낸 사람만이 저런 작업실에 앉게 되는 것일테다. 


물론 그래도 나는 문체부 쓰기 정체와 <진짜공간>에 나오는 인간미 넘치는 집 그리고 큐트병맛 스타일이 좋다. 스위스 포스터가 아무리 심쿵하게 멋있어도 내 방에 로모그래피 개구리 포스터를 대신할 순 없을 거다. 그런데도 내 취향 아닌데도 선생님 작업실 너무 멋져 충격받아서 밤에 잠이 안 왔다 세상에 마상에나



깨달음) 친구 찍을 게 아니면 쩜팔을 가져가지 말아야겠다. 저기 엄청 멋졌는데 사진에 안 담김. 오십미리 화각이라 물리적으로 안 담김... 나중에 다시 가서 찍어보든가 해야겠다.


9층 옥상 뷰도 대박적이었다.




저러고 선크림 없이 돌아다녔더니 홀랑 타서 살갗이 근질거린다.

선크림 바르고 15-30 물려서 다시 찍으러 가야지 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