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화론 시간에 새내기 남자애들 셋이 발표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렸다. "팩.트.입니다." 초록창 댓글러를 오프라인에 데려와서 마이크를 쥐어 준 격이었다. 내용이 쓰레기인 건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해한다. 태도까지 쓰레기였다.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좆 얘기만 나오면 몸을 배배 꼬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철없는 생각을 곧장 마이크에 대고 떠든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대충 알 것 같아서 더 불쾌했다. 참고로 그 반 수강생 성비가 극단적으로 남초다. 부럽다 야. 그게 바로 권력이야.
멍청한 걸 어떻게 까발릴지 메모하면서 듣다가 불쾌한 게 도를 넘었다. 이걸 왜 듣고 앉아있어야 하지? 교수님도 새내기 패기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걸 매주 들어야 한다니 앞이 캄캄했다. 질의응답이라며 이런저런 질문이 오갈 동안 교수님은 안절부절하면서 계속 나를 힐끔거렸다. 거기서 내가 끄적여 놓은 메모 중에 하나만 읽었어도, 아니 발표자님 점심 뭐 드셨어요?만 해도 발표의 질이 올라갈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이없게도 걔네가 너무 저열해서 모든 의욕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심하게 자책했다. 여자가 되어서 설치고 떠들지는 못할 망정 무기력하게 침묵하다니. 가끔 나는 명백히 나보다 멍청한 사람을 보면 "걔는 내가 똑똑한 걸 모르며" "나는 걔 앞에서 똑똑함을 과시해서 지위를 증명해야 한다"는 걸 망각한다. 결국 나는 걔네를 더러워서 피했고 불쌍해서 봐 줬는데, 놀랍도록 아무도 몰라준다. 개싸움 될 게 뻔하니까 안 끼는 게 품위 유지라는 것도 착각이다. 존재부터 몸부림쳐서 증명해야 하는 내 형편에 품위는 무슨.
나만 괴롭기 억울해서 하는 말인데 교수님도 나쁘다.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이 새내기들한테 발표를 맡기다니. 개떡같이 발표해도 찰떡같이 수습할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셨으면서 참 무책임하시다. 등록금 내고 고삐 풀린 망아지쇼를 강제 시청한 우리는 무슨 죄냐. 교수님 역량이 여기까지인 것 알았고 실망했고 다음 주부터는 내 등록금 회수를 위해 열심히 나서야겠다. 두 번 다시 이따위 일로 분노하려거든 그냥 다시 삭발한다. 그럼 어차피 가만 있어도 관종이라 아무 말이나 씩씩하게 잘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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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할말 다 하면서 화병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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