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mi

요가 레깅스를 샀는데 코르셋이 왔다




요즘 수영과 요가를 매일 다닌다. 목적은 기초체력 향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절망하지 않는 육체 가지기"가 목표다. 뭐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을 때 쿨하게 계단을 택하는 건실한 인간이 되는 건 기초체력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긍정적인 멘탈과 편안한 신발과 안 더운 날씨까지 맞아떨어져야겠지.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좀 더 쉽게 그 핑계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6층 자리까지 쉬지 않고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와서도 헉헉대지 않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기능 향상이 목적이라 기능만 좋아진다면 모양은 상관 없다. 승모근이 올라오든 알이 배기든 관심 없어요. 요컨대 애플힙과 23인치 허리로 신체를 조형하는 게 목적이면 그게 코르셋이 아니고 뭐냔 말이다. 그래서 기어이 선을 긋는다. 저는 그 짓거리는 하기 싫거든요. 그래도 요가 쌤은 "저희 힙업 운동 할게요"한다. 아...ㅎ 그래 운동 되는 건 똑같으니까 뭐...!


그런데 요가복 레깅스를 샀다가 뒤통수를 후려맞았다. 1+1이길래 냉큼 시켰는데, 입으니까 아랫배가 졸려서 반강제로 인간 호리병이 되었다. 핏이 말 그대로 코르셋이었다! 


요가는 자세가 중요하니까 타이트한 옷을 입는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근데 왜 몸을 졸라매서 보정해야 하는 거지? 


...그니깐 스포츠웨어가 편하다는 것도 옛말이다. 요즘 운동복은 똥배는 누르고 힙은 업 시킨다. 존나 불편한데,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예뻐" 보인다. 그래 시바 우리가 지지 하디드나 켄달 제너가 아닌데 어떻게 일상복에 애슬레저룩을 입나 했더니 "안 되면 되게 하라"로 입는 거였구나. 무릎을 탁 쳤다.


(막간후기: 당신을 인간 모래시계로 쪼여 줄 "안 되면 되게 하라" 요가 레깅스 구매처는 "에르베"입니다. S는 몹쓸 아기옷이라 버렸고 M은 그나마 입을만합니다. 162/51.)


통용되는 레깅스 구매포인트는 (1)Y존 부각이 적을 것 (2)아랫배를 잘 잡아줄 것 (3)팬티자국이 안 날 것 의 세 가지 정도. 따져 보자. Y존 부각 없는 레깅스? 그러려면 레깅스가 문제가 아니라 아랫배가 오목하도록 졸라 말라야 한다. 팬티 자국? 엉덩이가 살인데 어떻게 자국이 안 나? 유튜브에는 레깅스에 티 안나는 팬티 추천이라며 노팬티 대신 팬티라이너를 붙이라는 꿀팁까지 있었다. 댓글은 역시 성희롱 잔치. 아랫배를 쏘옥 넣어 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코르셋이 하던 기능이다.


이쯤되면 대체 누가 레깅스가 활동적이고 편하다는 개소리를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해방? 자기검열만 늘어났다. 이 노골적인 패션 앞에 선택지는 둘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비니루를 걸쳐도 힙할 몸매를 만들든가, 그럴 시간 없으면 압박 타이즈에 몸을 욱여넣어서 유행에 발 맞추든가. 생각해보면 여혐민국 유행 중에 정말로 "편한"게 있으리라는 기대도 참 비현실적이다. 


애슬레저룩 트렌드가 건강한 삶과 웰-빙을 생각하고 자기관리에 투자하는 쿨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통념은 기만이다. 팬티라인 마냥 사소한 것까지 검열하면서, 심지어 '건강함'과 결부되어 이제는 예쁘기만 하면 안 되고 건강하기까지 해야 한다며 여자들을 더 옥죌 뿐이다. 콤플렉스 쥐어짜고 열등감 자극해서 돈 쓰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여자 장사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유행. 교묘하게 주체적인 척 하고 있어서 토 나온다.


그러니까 쌤,,, 제발,,, 저한테,,, 몸매 좋아지는 운동법,,, 알려주지 마세요,,, 저,,, 그런 이유 아니어도 충분히 재밌게 운동한다니까요,,,


'tmi'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에 멧돼지스 출물  (0) 2019.04.29
시래기  (0) 2019.04.28
쾌차하세요  (0) 2019.04.05
새내기의 발표  (0) 2019.03.27
재주는 많은데  (0) 201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