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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백문백답 ☞

옛날 유행 중에 백문백답이란 게 있었다. 시시콜콜한 질문 100개에 답을 달아서 버디홈피나 싸이에 올리는 거. 요즘 말로 하면 TMI 그 자체다. 인싸도 아니었던 주제에 나는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백문백답을 하는 게 쏠쏠한 취미였다.

 

텅~빈 운동장에서 외치고싶은 말은 ☞~

주량(가장 많이 먹고 제정신이 아닌것) ☞~

복권 1억에 당첨된다면 ☞~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것 ☞~

 

시덥잖은 질문 100개에 답을 달면서 가끔은 대단한 연예인이 되어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한 나를 상상한다... 반짝이는 조명과 카메라. 호호...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전 국민이 제 발톱 때까지 궁금해 한답니다!

이런 망상을 하며 정성껏 답했다. 내가 나한테 질문하지 않으면 평생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들인데 그 때 하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평생 안 했을 테니까. 몇 년 뒤 거짓말처럼 싸이월드가 망했다. 하지만 tmi를 말하지 않으면 죽는 병은 지금 보시다시피 낫지를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저녁을 먹으면서 돈 벌기의 어려움과 육체노동의 피곤함, 졸작, 교수님 원망, 자기비하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좋기는 하지만, 얘기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슬픈 주제들... 그러다 지혜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너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면 마음에 들어? 구체적으로."

백만 년만에 백문백답 같은 질문을 받아서 깜짝 반가웠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음... 같이 길 걷다가 까마귀 소리 들릴 때 있잖아. 그걸 꼭 따라하는 사람 있다. 까악~! 아악~! 하고. 그거 너무 웃기고 나 진짜 정신 못차려."

"...그게 왜 좋아?"

"일단 너무 웃겨. 멋있는 척 안 하고 소탈하고, 귀 열고 다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몰라 그냥. 너는?"

"나는 재채기할 때 소매 안쪽에 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더라고. 배운 사람 같아."

"꺅! 그건 나도 좋아!"

뜬금없는 질문이 눅눅한 화제에서 우리를 구원했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여러 지인들에게 써 먹었다. 수집한 데이터는 나만 알고 있도록 하겠다. 나만 좋은 사람 되고 싶으니까.

남들이 좋아서 정신 못 차리겠다고 하는 행동에 딱 내가 해당될 때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길 가다 까아악~거리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그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놀라워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냥 행동이 좋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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