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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전시

성곡미술관 <독일디자인 100년>


성곡미술관 <독일디자인 100년>

2018. 5. 25 ~ 8.26

주최 성곡미술관, 주한 독일문화원

입장료 10000원 





나 공디러 안 가고 못 배기는 전시 주제다.

가기 전에 네이버에 검색해서 리뷰를 찾아봤다. 딱히 땡기지 않았으나 우리 전공이니까 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노잼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타이틀은 <독일디자인 100년> 이지만 내용은 구체적으로 '독일디자인연맹(DWB)'의 1907년~2007년 아카이브다. 독일공작연맹이라는 번역어가 더 익숙한데, 왜인지 전시 관련 모든 텍스트에서 Der Deutsche Werkbund 를 '독일디자인연맹'으로 번역했다. 혹시나 해서 구글에 '독일디자인연맹'을 검색했더니 온통 이 전시 보도자료다.


혼자 보다가 2시 도슨트 투어 시간에 맞춰 합류했다. 읽을거리만 많아서 지루했다는 리뷰를 미술관 측에서도 의식한 모양이다. 순회전이라 장소 성격에 아주 맞지는 않는다고 도슨트님이 설명해 주셨다. 미술관보다는 박물관스러운, 텍스트 위주 연대기 형식의 전시다. 타이틀에 관해선, 독일디자인연맹이 막강했으니 곧 독일 디자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걸로...넘어가지만 

알면 알수록 전시가 구렸다!


첫째, 저 메인 포스터의 주전자 실물이 안 와 있다. 도슨트 선생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저희 밖에 걸린 현수막 속 주전자 찾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경쓰지 못해서 죄송해요...(난처한 웃음^^;)" 먼저 듣지 않았으면 사기 당한 기분이었을 거다. 듣고도 황당하다. 없는 전시품을 대문에 걸다니! 


둘째, 첫 번째 전시실에 도서(카탈로그)가 전시된 유리관 앞에서 '오늘 오신 분들은 운이 좋으시다'고 하셨다. 왜인고 하니 유리관 속 책이 며칠 전까지는 전부 덮인 채 전시되어 있었다고. 독일에서 온 전시 디자이너가 그렇게 덮인 채로 디스플레이하고 가는 바람에 이때까지 오셨던 분들은 책 내용을 아무도 못 봤다고 한다. 그러다 내용을 보고 싶어하시는 관객 분이 계셔서 며칠 전에 부랴부랴 유리관을 다시 열고 카탈로그 면이 보이게 펼쳤다는 것이다. 아앗... 앞서 왔던 사람들 누런 책표지만 보고 간 거 실화입니까...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미흡한 전시 준비를 변명하는 느낌이었다. 전시 설명도 특별히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깊이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나 말고도 앞서 불평한 누군가가 있었구나' 하며 끄덕끄덕할 뿐이다. 


 


1907년, 매킨토시 의자와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 디자인.



최초의 인하우스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 아에게(AEG)에서 디자인한 커피메이커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1900년대 초에는 아직 장식적인 스타일이 남아있다. 이후 단순명료 모던 디자인 스타일의 제품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디자인사 시간에 배운, 익숙한 제품과 도판들이 눈에 띈다.

독일공작연맹에서 헤르만 무테지우스는 산업 생산에 적합하도록 규격화, 표준화해 수출 진흥을 꾀했고

앙리 반 데 벨데는 수출을 목적으로 예술적 자기표현의 여지를 없애는 걸 거부해서 갈등이 있었다고 함.

이후 대중사회 도래하고 대량생산 물결에 힘입어 승부는 무테지우스가 이겼다는 스토리.

(n년전 디자인사 시험 문제였다.)



직설적이다.




사진을 관람객 시선 방향으로 기울여서 매단 디스플레이 방식이 특이했다. 다른 전시실 사진들이 지극히 평범하게 벽에 붙은 것과 대비되어 이 공간만 이질적이다. 왼편 벽에 전시된 자료를 보니 당시 독일에서 열렸던 건축사진전에서 실제로 이와 같은 디피 방식을 선보였던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을 더 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파격적으로 구성해 놓고 언급이 없으니 뜬금없게 느껴졌다.




브라운은 맞는데 디터 람스는 아니었습니다...



멤버들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일하는 곳, 이런 게 100년을 이어온 독일공작연맹의 저력이 아닐까.



나치 집권기의 독일공작연맹 디자인. 

 


독일공작연맹은 나치에 협조하며 이 시기를 '둥글게' 넘겼다. 디자인이 나치즘에 부역하면 어떤 형태일까 궁금했는데, 전시 설명 중에 답이 있었다. "(독일공작연맹은) 1937년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나치 선전 전시에서 '부지런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하려 했다. (중략) 그 전시 타이틀은 <생산적 국민>." 국가를 위해 노오오력하는 선진 국민 이미지를 주입시켰구나.


연대가 동시대에 가까워질수록 일상용품과 독일공작연맹 작품의 갭이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 집에서 쓰는 커트러리, 고양 이케아에서 9900원에 팔고 있는 스툴 등 많은 일상용품의 원조가 독일공작연맹이다. 내가 갖고 있는 사물의 뿌리를 깨닫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법한데... 스토리텔링이 애매하니 관람객이 'ㅡㅡ머야 이거 우리 집에도 있는 거구만...' 이런 반응을 보이고 만다. 아쉽다. 이상 오늘의 착즙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