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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책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2019)

아니 그런거였어??

 

도믿맨이 슬쩍 다가와서 인생 얘기 시작하려는 낌새를 눈치채고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사람처럼<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봤다. 반쯤 읽다가 덮었다. 첫째론 영성, 명상 같은 종교 관련 정서가 넘나리 생소했다. 둘째, 좋은생각st 거시적 행복지침서 같은 톤이라 '이거 또 똑같은 말 하겠지'싶어서 무척 대충 읽었다. 종교에 닫힌 마음인 나는 필자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검열하는 데 힘 다 썼다. 근데 어쩌다 보니 다 봤네. 여행 썰이 웃기니까 그거나 봐야지... 하다 끝까지 봤다. 매력적인 책인 건 알겠다. 안 것보다 실제론 더 좋은 책인 것 같다. 내가 아직 마음이 안 열려서 그럼.

최소한 재수 없는 자기계발서 느낌은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 선생질 해서 아 덮을까 싶다가도 막줄에 "사실 이건 제 자신에 대한 얘깁니다" 로 마무리하시니 어떻게 미워할 수 있어? 종교 얘기가 나와서 아무래도 영혼 찾는 자기계발서 톤으로(나라는 편견 가득한 인간에게는) 다가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괜찮아 괜찮아 너는 소중해 사랑해 너를 응원해" 이쪽은 더 아니다. 마냥 듣기 좋은 말만 하지는 않는다. 선 넘어 충고하질 않을 뿐. 찬찬히 읽어 보면 되게 조신한 느낌이다. 그래서 지하철 좋은글귀 감성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유독 알맹이가 신선하다. 삶의 지혜류 책을 안 보는지라 뭐라 표현할 단어를 모르겠다. 웃기고, 팩폭이면서, 은근히 위로가 된다. 그 중에서도 임팩트 갑 구절은 "자네 완전 미쳤군!" (중략) "하지만 완전히 미치지는 않았어." 였다. 아래 옮긴 부분은 나중에 써 먹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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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명상 센터에서 가장 성가신 것 중 하나가 모기이다. 명상 중인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아는 영리한 모기들이 집중 공격을 해대기 때문이다. (중략) 깨달음의 최대 방해꾼은 다름 아닌 모기라는 생각이 든다.

셴파는 가려워서 자꾸 마음이 쓰이는 동시에 가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조차 어리석어서 생기는 고통이다. 모기에게 물렸든 모욕적인 비난을 들었든, 혹은 자기 자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든 머릿속에서 강박적으로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는 상태로 고착되는 것이 셴파이다. 모기에 물린 것도 괴로운데 그곳을 계속 긁어서 스스로 더 고통받는 것이다. (중략) 셴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아니라 긁지 않는 것일 뿐이다. 모기에 물려도 몇 초만 참으면 가려움이 사라진다. 나아가 '모기가 나를 물었군.'하고 생각하는 대신 '모기가 이마를 물었군.'하고 생각한다. 모기에 물린 고통을 피를 흘리는 상황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마에 앉은 끈질긴 모기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다. 물론 뱀이나 독충에 물렸는데 '발목을 물었을 뿐, 나를 문 건 아냐.'라고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티베트 속담은 말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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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지 않고 참으면서 "모기가 나를 물었군" 이 아니라 "모기가 내 발목을 물었군" 하면서 참기 (셴파 탈출법)
이거 이상한데 왠지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모기 물렸을 때 이 글을 먼저 떠올리는 인간이 되었다면 독서가 무척 유용했다고 생각할 거임

+ 띠지에 저자 얼굴사진 꼭 넣어야만 했나...그냥 편견 촉매제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