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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책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 김주희, 현실문화 (2020)

지하철에 보면 여성 전용 대출 광고가 있다. 미즈** 같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런 게 왜 있는지. 특별히 여자가 돈을 더 잘 갚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굳이?

그게 궁금하던 차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여성 전용 대출은 성매매 업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여자는 몸을 팔아서라도 빌린 돈을 갚게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게 정말일까? 그래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펼치자마자 그 대부업체 이름이 나와서 흥미진진하게 봤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선불금 등 성매매 업주와의 부채가 무효라는 판례가 이어지면서 업주가 아닌 제 3자, 즉 사채업자나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여성들이 직접 대여금을 받도록 주선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즈사랑', '여성 전용 안심대출 레이디캐시'처럼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이 금융시장에 등장했다.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이 늘어난 것은 '아가씨 대출(해당 여성이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업주의 확인만으로 무담보, 무서류로 대출해주는 상품)'등 성매매 산업 종사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 상품이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가씨 대출'은 제 3금융권, 혹은 불법 대출 상품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제2금융권에서도 "유흥업소 전용 대출"상품이 만들어져 사회문제로 부상한 바 있다.(31)"

정리하자면 여성 전용 대출서비스는 성매매 업소의 아가씨 대출에서 유래했다. 흥미로운 사실. 음모론을 기대했는데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듯 보였다. 내 궁금증은 여기까지.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은 투자자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첫째, 신변이 불안하기 때문에 채권추심이 쉽다. 둘째, 일하는 데에 드는 고정지출(출근비, 지각비, 옷값)부담과 이동비, 성형수술비 등으로 목돈을 대출받는 일이 잦다. 이런 계산을 바탕으로 화류계 여성들은 노동 없이도 신용을 제공받게 되었다. 여성은 포주와의 불편한 대면 관계를 벗어나고, 은행은 이자 수익을 얻는다.

'금융 산업은 엄밀하고 과학적인 수식에 의해 움직이는 선진적인 산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금융화의 말단에서 이 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협박, 폭력, '뽑아 먹기 기술' 등 채무자의 삶 자체를 이윤의 원천으로 만들어내는 수탈 그 자체이다.'(198)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아가씨 대출은 대략 연 24%의 고리대 상품이다. 이 정도면 모르는 사람 눈에는 수탈 맞다. 과하게 높게 책정된 생활비, 의도적으로 넉넉하게 지불되는 선불금 등으로 지출 금액을 부풀린 뒤 대출을 받게 하고, 그마저도 수수료를 엄청나게 떼어 간다. 여성이 손에 쥐는 금액은 얼마 안 되고 그마저도 또 빚. 결국 한 달 꼬박 일해 번 돈을 모두 카드값, 대출금 값는 데에 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자신이 자유롭다고 여긴다. 빚으로 얻은 거지만 어쨌든 번듯한 집과 차가 있고, 원하면 언제나 직장을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으음... 알듯말듯해... 본문을 옮겨 놓는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부채 화폐가 제공하는 자유의 공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금융적 실천을 통해 삶을 지속한다. (중략) 또한 단순히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채를 일으키고 이를 상환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이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몸, 삶을 조절한다. 이는 성매매를 통한 금융화의 재생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임금이 없는 여성들에게 신용이 제공되는 까닭은 그들이 겹겹의 다종다양한 채권자의 유일한 물적 담보가 될 수 있는 몸을 가진 여성, "아가씨"이기 때문이다.(383)'

저자는 성매매 여성들이 "파산 불가능한 주체"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로 부채를 사용하며, 여기에 부과되는 이자와 수수료 등의 비용을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렇게 성매매 산업이 금융화되면서 산업 구성원들에게 신용이 확장된 현실에서 파산은 여성에게 이 모든 현금 흐름을 멈추고 그 바깥에서 자유와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이 획득한 기회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파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개인이 실제 파산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이 놓인 구조적인 환경을 살펴보았을 때 이들은 "파산 불가능한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미다. (중략) 이들에게 파산은 스스로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추방되는 것이다.(384)'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돈에 묶여 있다. 이런 자유를 자유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활동가 출신이다. 십여 년간 현장에서 화류계 종사자들을 직접 만났다. 나눈 이야기들을 그대로 수록해 두었다. 몰입해 금세 읽었다. 실감나는 화류계 내부자들의 증언은 이 책의 막강한 매력포인트다. 저자가 만난 현직 성매매 여성 중 한 명은 대학원 다니는 미대생이었다. 학자금 대출 갚고 졸전 재료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시작했다고 했다. 강남 룸살롱에서 바짝 벌고 6개월 뒤에 이 바닥 뜨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터무니없는 비율로 인상되어 지금에 이른 대학 등록금은 2013년 한 해 56만 명의 대학생 채무자를 만들어냈으며, 그 결과 여자 대학생의 경우 거대한 인구 유입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성매매 산업에 주요한 인입 집단이 되었다. 이전 시대와 같은 방식의 '마이킹'이나 '선불금'을 동원하지 않아도 이미 '빚이 있는 젊은 여성'인 이들이 업소의 타깃 집단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 여성들, 자신의 대학 공부를 위한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몸 가치'가 가장 높은 시기에 강남 유흥업소에 진입해 스스로 '기회'를 만든 이들을 누구보다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 채무자'의 도덕적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280)'

따라서 저자는 '지하경제 양성화'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사업' 등의 현행 정책을 비판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국가가 자활을 도와야 할 만큼 수동적이지 않고, 겹겹의 금융 서비스를 통해 이미 지상의(지하경제의 반대말...) 경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 읽을 때는 금방 읽었는데 내 말로 정리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