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지혜네 삼촌 평창 집에다 내 염통 일부를 놓고 온 것 같다 맨날 그 생각뿐이다.
지혜가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 보고 와 너무 멋지다 생각만 하다가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사진상으론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대형견 여덟 마리가 있는 곳. 큰 창 너머로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휘날리고 햇살 좋은 마당 뒤론 그림같이 단풍 든 산 능선이 보이는 집이다. 놀러오라는게 혹 지나가는 말일까 겁났다. 바로 전화 걸어서 이번 주말에 가겠다고 했다. 인스타에는 멋있는 것만 올렸을 거고 현실은 다를 수도 있으니 실망 말자고 다짐하며 버스를 탔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천국이 그런 게 아닐까.
그 댁의 개들은 내가 이제껏 본 개 중에 가장 튼튼하고 편안해 보였다. 난롯가에 누워서 스르르 잠드는 애들. 마당에서 자기들끼리 숨바꼭질하고 막대과자를 와작와작 뜯고. 우리가 밥 먹을 땐 밥상 옆에서 데룩데룩 눈을 굴리면서 입꼬리에 침방울을 쭈욱 늘어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젓하게 기다리는 게 신통하다. 자려고 이불 깔고 장판 켜고 누웠더니 개들도 하나 둘씩 따라들어와서 엄마아빠 옆에 한 자리씩 몸을 낑군다. 슬슬 눈꺼풀을 닫는다. 캄캄한 집에 주황색 난롯불만 타닥타닥 타는데 어른거리는 강아지 그림자가 아주아주 컸다. 조금 눈물날 정도로 뭉클했다. 너네 진짜 사랑받고 자랐구나.
동물과 같이 사는 일의 미묘한 긴장에 대해 생각했다. 동물의 행복은 오직 주인의 아량에만 기대어 있다. 내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내가 춥다고 창문을 닫으면 고양이는 심심한 거고, 내 퇴근이 늦어서 밥을 늦게 주면 고양이는 굶는 거다. 나의 편의와 너의 행복 사이를 저울질하게 될 때마다, 잔인하게도 반려동물은 소유의 문제라는 걸 떠올린다. 허울 좋게 가족이라고 포장하는 것뿐이지 실은 전부 주인인 내 손에만 달린 거잖아.
그러니 행복해보이는 개들하고 살려면 자기 몫을 꽤 많이 내놓아야만 했겠다. 밖이 추워도 개들이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열어두는 거. 작은 장판에 개들까지 누우면 좁지만 그런 대로 낑겨 자는 거. 가죽이 다 뜯어진 낡은 소파를 개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못 버리고 있는 거. 오랫동안 수없이 많은 것들을 양보했을 거다. 그집 개들은 곧 말문 터질 것 같은 눈동자를 한 게 그래서인가. 너무 사람 같아서 어쩐지 소유의 영역을 떠나 있는 애들처럼 느껴진다. 그런 지성체하고 곁을 나누고 믿음을 쌓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 일정량의 개 털이 섞여 있는데 안 그런 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애초에 개들하고 엮어가는 하루하루인걸요.
봄이의 넓적한 방댕이뿐만 아니라 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치커리와 쑥갓과 브로콜리와 가지무침과 배추전과 무생채도 너무 사랑이었다. 지혜가 나 소식한다고 소개했던 게 무색하게 많이 먹었다. 맛깔나는 야채 반찬은 소중하니까요. 지혜와 삼촌의 물샐틈 없는 티키타카 덕분에 많이도 깔깔거리고 웃었다. 하루가 시끄럽다고 월월 짖으면 지혜가 유치원 선생님처럼 조용히 시킨다. 인스타에서 본 아름드리 버드나무는 꽃매미가 바글거려 곧 베어버릴 거라고 하셨다. 나무 둥치가 꽃매미 배설물 때문에 검어지는지 처음 알았다. 염치불구 덥썩 놀러간 저를 환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놀러가길 너무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