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mi

좌닌한~~

노비...

학교 다닐 때 나는 수업을 알차게 듣는 거에 집착했다. 느낌으론 아는데 말로 할 수 없었던 것들에 이름이 붙여질 때, 떠다니던 생각이 지도상에서 제자리를 찾을 때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기분에 미쳐 있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을 주지 않는 교수들이 싫었다. 한정된 시간표 칸수를 재밌는 강의로만 꼭꼭 채워도 모자랄 판에.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대학을 다니는 굵직한 이유였다. 그때쯤 나는 강의실에 나보다 빛나는 눈동자는 없을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 자신은 만점짜리 학생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중요한 건 교수의 태도였다. 나한테는 예민한 문제였다. 난 이렇게 뜨거운데 교수는 왜 저리 미지근해? 휴강 왜 이렇게 많아? 왜 과제에 피드백을 안 줘? 왜 이렇게 일찍 끝내? 직무유기 아냐? 교수가 어떻게 저러지? 저게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야?

그땐 교수도 돈 받은 만큼만 하는 직장인이란 걸 몰랐다. 그래서 저런 꼰대같은 소리도 했었쥬... 한편 그런 생각을 갖고 몇 년을 버틸 수 있었다는 건 내 건방진 환상에 호응해 준 교수님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대학 품이었다.

작년 이맘때 졸전을 해치우고 이래저래 일 년이 흘렀다. 학교 울타리 바깥의 상온이 몇 도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성현선배가 했던 말인데, 대학이 돈밖에 모른다고 욕하지만 밖은 그것보다 더 돈밖에 모른다. 증맬 공감... 다닐 때는 몰랐다. 학구열과 사명감의 온기가 남은 곳이 그 정도다. 무턱대고 성의 있게! 책임감 있게!를 기대해도 몰매 안 맞는 곳은 대학뿐이다. 회사에서는 기대 전에 입금해야 하더라고요.

새로운 걸 알아가면서 기쁨을 느끼는 일을 잘 한다고 칭찬해주는 곳도 학교밖에 없다. 며칠 전에 생각한 건데, 회사에 대표님의 6개월 된 검정 푸들이 있다. 간식만 좋아하고 사료를 잘 안 먹는다. 그러다 가끔 사료를 먹으면 바로 폭풍 칭찬을 받는다. 그냥 밥 먹은 건데. 나 좋은 일을 한 것뿐인데 칭찬과 격려가 쏟아지는 상황이 이 지구상에 흔치가 않거든요. 아기 푸들은 귀엽기라도 하지만 20대 중반의 저는 그렇지도 않았답니다. 등록금 냈으니 응당 받는 서비스라고 여겼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의 금전감각으로 따져 봤을 때 전과 같은 격려와 지지를 맥락 갖춰 구매하려면 4개월에 280만원보다는 더 지불해야 할 거 같다. (내가 400만원대 등록금을 냈더라면 생각이 달랐을까?)


아무튼 졸업 이후로 칭찬은 남 좋은 일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게 됐다. 내 주제에 남 도울 능력도 없고 능력이 있어도 그럴 타이밍이 안 와. 그래서 고민이다. 반오십년동안 학생으로 산 인간의 자존감은 대부분 선생님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왔는데 이젠 인생에서 선생님이란 포지션이 사라졌으니 누구에게 기대 인정욕구를 착즙해야 하나. 대학원을 가든 연애를 하든 장기적으로는 자체조달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남의 살 먹고 양분을 얻던 동물로 살아왔지만 이제 스스로 광합성하는 식물로 살아야 할 판...그래서 이렇게 야채가 땡기는 걸까... 채식을 하자!

암튼 아직 학교 다니는 친구, 동생들 보면 이제서야 좀 부럽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어... 

 

'tm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망의 귀마개 접기  (0) 2021.01.31
난감한 일 3가지  (0) 2021.01.07
시골 개와 느긋한  (0) 2020.10.28
베개 밑에  (0) 2020.10.11
돈벌레 데일리 루틴  (0) 202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