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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책

<IMF 키즈의 생애> 안은별, 코난북스

'자전적'이란 단어와 엮인 모든 걸 'TMI', '안물안궁'과 등치시키고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원체 타인에 관심이 없는 성격 탓이기도 할 테고, 그간 접해 온 자전적 글이랄 게 결국 꼰대 할배의 인생 훈계질에 불과했단 기억 때문이기도 할 거다. 그런 내가 결정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한 강려크한 촌평 때문이었다. 이렇게 시작한다. "인정하건대 나는 남성 진보지식인들을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라기에는 매번 진부한 논리로 미지근한 소리를 해대도 선생님 대접을 받으며 기름지게 늙어가는 팔자가 배 아프게 부러워서랄까."(약 오 년 후 내 입에서 나올 소리 같다는 진한 예감) 이어 필자는 담백하게 '재밌다'고 추천했다. 읽었다. 정말 재밌었다.

어차피 인생의 판도는 크게 바뀌지 않는구나. 앞날을 결정하는 요인에 우연이나 행운 같은 건 없었다. 전부 인과법칙이다. 내용 중에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어 1억 고료를 받은 인터뷰이가 있었다. 내 기준에선 와 대박. 그런데 본인은 1억 받을 줄 예상했고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현타. 그러니까 내 미래에도 대박 사건 같은 건 없겠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배정된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왓챠가 영화 추천하듯이. 고딕체로 쓰인 저자의 코멘트에 매 라운드의 선택들이 갖는 경향성 분석도 있다. 그것까지 읽고 나니 정말 인생에 그냥은 없다.

이 깨달음이 세대론 읽기보다 앞섰다. 그래서 내 얘기가 아님에도 재밌게 읽었다. IMF 키즈가 당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생이니 나보다 열 살 정도 위인 언니오빠들이다. 그렇대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내 나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렇게 생각하네, 나도 곧 이렇겠다. 마냥 밝지만은 않아서 책을 덮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4월 11일에 광주 놀러갈 때 이 책 들고가서 읽었고 오늘이 6월 말일이다. 그 두 달 반 새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10년 이상 지난 과거에 대해 열심히 물어봤다. 이 책만큼이나 재밌는 얘기가 나왔다. 나한테 자기 얘기 해 주다가 셀프 현타 맞는 친구도 있다. 앗, 괜히 물어봤나 싶으면서도 뭔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