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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책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프레스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프레스

쉽게 설명하려는 생각이 없는 문체. 각주가 본문보다 더 길기도 함. 전체적으로 밀도감이 빡 있고 종이도 겁나 두꺼워서 잘 펼쳐지지도 않음. 이래 놓고 맹탕인 것 같으면 지적 허세야 뭐야 하면서 안 읽었을 텐데, 중간중간 툭 튀어나온 송곳같은 생각이 있어서 헉 함. 머리아파 죽겠는데 계속 읽게 됨. 은근 매력적이다.


1 /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

 

1. 현대의 특징: 근거 없음

많은 동시대 철학자들은 근거 없음이야말로 현재의 순간을 특징짓는 지배적인 조건이라 지적한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주장이나 기초적인 정치 신화의 안정적인 근거가 되는 그 무엇도 상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주체와 객체 그 모두에게 영구적인, 아니면 적어도 간헐적인 자유낙하 상태일 것이다. (p.15)”

 

2. 근대적 시공간 관념의 붕괴

최근 오버뷰, 구글맵 보기, 위성 보기 등 조감도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1점 투시의 안정된 선형 원근법 체계는 다중 시점, 중첩되는 창, 왜곡된 비행경로, 다변화된 소실점으로 보충되거나 대체되고 있다. (p.17)”

 

3. 근대적 시공간 관념

선형 원근법의 근본적 부정 두 가지 (1)지표면의 만곡을 무시하고, 지평선을 추상적인 직선으로 여긴다. (2)부동의 외눈박이 관찰자를 천명한다. 즉 자연적, 과학적, 객관적은커녕 추상을 바탕으로 하고 그 어떤 주관적인 지각에도 부합하지 않음. “대신 수학적이고 편평하며 무한하고 연속적인, 등질적인 공간을 산출하고 이를 현실이라 천명한다. 계산, 항해, 예측이 가능한 그 공간은 미래의 위험을 계산해서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한다.(p.19)”

 

4. 선형 원근법의 양가적 작동

그 패러다임 전체가 관찰자의 눈 하나로 수렴되기에, 관찰자는 그 눈이 정립하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한편, 관찰자의 중요성은 시각이 과학 법칙을 따른다는 가정 때문에 약화되기도 한다. 선형 원근법은 주체를 시각의 중심에 둠으로써 그 주체에 힘을 실어주는 반면, 주체를 대개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재현의 법칙에 종속시킴으로써 관찰자의 개별성을 약화시킨다. (p.23) !

 

5. 최근 등장한 시각적 패러다임, 선형 원근법의 지배력 약화

1단계: 터너의 그림. 수평선이 뭉개지고 안정된 관찰자 시점을 흩뜨림2단계: 몽타주, 큐비즘, 상대성이론. 다변화된 시각적 관점의 접합, 선형적 시간관의 붕괴 (특히 시각 문화에서) 항공술의 발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조감의 시선. 항공술의 꾸준한 발달과 함께 지난 몇 년간 시각 문화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군사 및 엔터테인먼트 이미지로 포화 상태다.

 

6. 조감의 시선 + 감시

에얄 와이즈만의 분석을 인용. 지정학적 권력은 한때 평면적이고 지도 같은 표면 위에 경계를 그리고 방어하면서 분배되었다. 반면 지금은 권력이 점차 수직적 차원을 점유하며 분배된다. ex.수직적 통치술. 영공을 지면과, 지면을 지하와 분리하고 켜켜이 층을 나눠 다양한 계층의 공동체가 y축상에서 편을 나누면서 갈등과 폭력. 필자는 바닥(지표면)에 대한 치안 행위가 공중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함 ex.무인 항공기, 공중 정찰 제트기, 호크아이, 지구 관측 위성 등.

 

7. (1번의)‘자유낙하와 오버뷰가 무슨 상관?

다수의 조감도, 3D급강하, 구글맵, 감시 파노라마는 사실 안정적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들은 그 근거가 애초에 존재한다는 가정만을 창조한다. 돌이켜보면 이 가상의 바닥은 안전하게 공중 부유하는 멀리 떨어진, 우월한 관람자를 위한 오버뷰와 감시의 관점을 창조한다. 선형 원근법이 정지한 상상적 관찰자와 지평선을 설정한 것처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관점도 부유하는 상상적 관찰자와 안정된 상상적 바닥을 상정한다.(p.31) ㅡ내 눈으로 직접 오버뷰를 볼 일은 거의 없음. 드론 카메라에 내 눈이 달린 양 '상상'하게 됨. 드론이 비춰 보여주는 바닥이 진짜 바닥은 아닐 수도 있음. 한 시점에서만 완전히 보이도록 맞춰진 조각난 이미지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튼 드론이 찍어 온 영상은 전지전능한 진실로 여겨짐. 

 

7-1 오버뷰가 만드는 새로운 시각적 정상성

감시 기술과 스크린에 기반을 둔 오락거리,로 안전하게 압축된 새로운 주체성. 사실상 선형 원근법의 극복이 아니라 급진화일지도. 기존의 주체-객체 구분을 고도화하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향해 내리꽂는 일방적인 시선으로 변모, 관점의 변위는 드론들에 위탁되어 탈체화(disembodied)되고 원격조종된 응시를 창출. 응시 자체는 카메라에 의해 이미 기계화되었지만, 이젠 아예 동떨어진 하늘 높은 곳에서 관찰하니 훨씬 전지적이게 됨.

 

8.수직성의 정치

군사, 엔터테인먼트, 정보 산업의 렌즈를 통해 스크린상에서 볼 수 있는 위로부터의 조망은 위로부터 강화된 계급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계급 관계의 보다 일반적인 수직화에 대한 완벽한 환유이다. (p.33) 조망은 대리(proxy)관점으로 안정성, 보안, 그리고 극단적 지배의 착각을 확장된 3D통치술의 배경으로 투사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위로부터의 조망이 공중 감시되고 생명정치적으로 치안되며 자유낙하중인 도시의 심연과 점령의 분열된 영토로서 사회를 재창조한다면, 그것은 또한 - 선형 원근법이 그랬던 것처럼 - 자체적인 종말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p.34) 어후 만연체...데카르트적 공간관이 세계를 배려놓았듯, 오버뷰가 만들 치안 사회도 위험하다는 말인 걸로 추정

 

9. 솔직히 여기서부턴 이해 안됨

그러나 지평선 및 관점의 다변화와 탈선형화를 인정한다면 시각의 새로운 도구들은 분열과 방향 상실의 동시대적 조건을 표현하고 나아가 변경하는 데 또한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p.36) 다시점의 3D애니메이션이 만드는 비선형적 이미지, 왜곡되고 콜라주된 영화 속 공간... 들은 실제로는 새로운 재현의 자유가 될지도.

 

10. 결론

기원과 바닥에 집착하는 공포에 수반되었을 것 같은 소속의 철학(philosophy of belonging)을 비판하는 아도르노 인용. “그러나 낙하는 무너지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제자리로 맞아 떨어지는 새로운 확실성 또한 의미한다. 고난의 현재로 우리를 되돌리고는 허물어져가는 미래와 격전을 벌이다 보면, 떨어지는 장소에 더 이상 바닥은 없고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런 공동체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대열의 편성만 전환될 뿐이다.(p.39)”

 

p.28 이 글은 영화학자 토마서 앨세서와의 격의 없는 대화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글에서 발췌한 다음 인용을 그 청사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입체경 이미지stereoscopic image3D영화가 현 정보사회를 통제사회로, 시각 문화를 감시 문화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일부임을 뜻한다. 영화산업, 시민사회 그리고 군사 부문은 이러한 감시 패러다임 안에서 모두 통합된다. 감시 패러다임은 역사 과정의 일부로서, 지난 500년간 서구사회의 행동을 정의해온 단안 시점monocular vision’이라는 바라보기 방식을 대체하고자 한다. 평면 회화, 식민주의적 항해술, 데카르트 철학과 같은 광범위한 혁신은 물론, 아이디어·위험·기회·행동 방침을 미래로 투사하는 개념 전체를 대두시켰던 것이 바로 단안 시점이다. 한편 비행 시뮬레이터와 여타 유형의 군사 기술은 3D를 지각의 표준적 수단으로 소개하는 새로운 노력의 일부다. 그런데 이러한 발달은 감시를 추가하면서 심화된다. 감시는 움직임과 행동의 전 목록을 망라하는데, 이는 진행 중인 과정들의 주시, 조종, 관찰에 내재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이전까지 성찰, 자의식, 개인적 책임이라 간주되던 가치들을 주체의 외부로 위임하거나 위탁한다.” Thomas Elasesser, “The Dimention of Depth and Objects Rushing Towards Us. Or:The Tail that Wang the Dog. A Discourse on Digital 3-D Cinema,” eDIT Filmmaker’s Magazine,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