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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대충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멜로디에 얹어서 부른다. 다음 가사는 모른다. 빨강머리앤에서 살짝 비껴난 95년생한테는 원곡보다 이쪽이 익숙하다.

"주근깨 빼(뚝.)"

허무쏭이라고. 다 알테지만 2000년대 초등학생들의 밈이다. 대표적으로 "아빠가 출. 엄마가 안와." 가 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의 몇 구간을 잘라내서 스토리를 반전시키는 언어유희의 일종이다. 반 애들은 점심시간마다 멀티(그땐 왠지 교실의 수업용TV를 멀티라고 불렀다)로 허무쏭을 틀고 깔깔거렸다. 낭랑한 전주에 이어 노래가 흐르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음악이 뚝 끊기면 빵 터지기가 국룰이다. 얔ㅋㅋㅋ 주근깨 빼랰ㅋㅋㅋ~~


근데 왜 하필 "주근깨 빼"야? 은근히 나한테 불똥이 튈까봐 걱정됐다. 내 광대뼈에도 막 깨가 생겨나기 시작해서였다. 아픈 것도 아닌데 왜 빼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이모와 엄마 친구와 친구 엄마들이 내 깨더러 이러니저러니했다. 누구는 선크림 잘 바르라고 했고 누구는 크면 알아서 없어질 거라고 했는데, 선크림 바르기 싫었던 나는 후자만 믿고 나머지는 못 들은 척했다. 빨강머리앤의 망령은 깨박이 초딩의 광대뼈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나이 들면 해결된다는 말들을 안 믿게 될 무렵 주근깨를 뺐다. 수능 끝난 고3때였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아차리자 더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크면 없어진다는데, 도대체 언제요? 허언이 아니라 경험담이면 "몇 살 때쯤 없어지더라"고 기억을 되짚어 얘기하는 성의라도 보이시든가, 언제 없어질 줄 알고 기다리라는 건지! 곧장 피부과 침대에 누웠다. 눈앞이 번쩍. 오징어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삐릭-따다닥!"
(으윽 다신 안 해!)

"삐릭-따닥!"
(너무 손해다!!)

가만 두면 하나도 안 아픈데, 조질 때는 악 소리나게 아프다. 너무 손해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니까 선크림 잘 바르고 관리하면 두 번 이 짓을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레이저로 몽땅 조졌다. 고난 끝에 말간 볼때기를 얻었다. 코시국 이후엔 마스크 뒤에 수납하고 잊어버렸다.

며칠 전 폰 앨범을 보다가 생각했다.

"셀카 화질이 왜 이렇게 구려?"

확대해 보니 미간과 눈 밑이 다시 주근깨로 뒤덮혔다. 쒯! 어쩐지 세면대 거울을 닦아도 닦아도 답답했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마스크 쓸 거라서 선크림 안 발랐더니, 안 가려진 부분만 집중적으로 생겼다. 그나마 멀쩡한 피부가 마스크에 가려지니 평소에는 더 드러워 보인다. 아이고 두야. 주근깨의 역습...

찾아보니 흰색 마스크가 자외선을 반사해서 드러난 피부가 더 심하게 탄다고 한다. 여러분 미간에 선크림 꼭 바르세요... 대충 매력이라고 우기고 살려고 했는데 자꾸 눈에 거슬린다. 세수하는 보람이 너무 없어 고민이다. 푸파푸파 해봐야 얼굴에 묻은 얼룩이 안 닦여서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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