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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원 모아서 퇴사



실수령액 월 164만 원 회사 10개월 다니고 천만 원 모았다. 이 돈 쿠션 삼아 편안한 백수생활 중이다. 그간의 돈 안 쓸 구석에 대해서 적어 봤는데, 읽어 보면 얘가 왜 천밖에 못 모았나 싶을 거다. 가만보면 돈쓸 구석은 보컬 레슨밖에 없는 인간이다. 사회초년생 돈관리 꿀팁 아니고요 남한텐 하등 도움 안되는 내용이다...


돈 안 쓸 구석 첫째, 치장 안 한다. 화장품 안 산다. 보습제하고 폼클렌징, 립밤이 끝이다. 보습제는 세타필 쓰다가 '일리윤 아토 세라마이드 크림'이 싸길래 바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거면 된다. 미용실도 잘 안 간다. 아끼려고 안 가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머리스타일을 정말 모르겠다. 작년엔 집 앞 미용실에서 두일컷(학생 커트) 한 번 했다. 연초에 혜나가 자기 미용실 옮길 거라 적립금 빨리 써야 한대서 나 데려가서 커트 시켜줬는데, 무슨 머리를 하고 싶은지 너무너무 말하기 어려웠다.

둘째, 새 옷을 안 산다. 필요한 건 빈티지 가게에서 고른다. 비위가 좋아서 남이 입던 옷이어도 찝찝함을 모르겠다. 한번 사건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인터넷 구제샵에서 트위드 스커트를 시켰는데, 받아보니까 안감 엉덩이 쪽에 피 같은 검은 얼룩이 크게 묻어 있었다. 구제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손빨래 촵촵 했다. '아이고 전 주인 생리 새서 놀랐겠네...' 검붉은 거품이 퐁퐁 이는데 아무렇지 않아서 나 자신도 흠칫했다. 옷은 맘에 들어서 그거 입고 시상식 갔다. 잘 어울리면 장땡이다. 누가 안 입는다고 내놓은 옷도 일단 줍줍한다. 재봉틀 할 줄 아니까 야매 수선한다. 남 해줄 실력은 못 돼도 나 걸칠 만큼은 할 수 있다.

셋째, 안 사먹는다. 카페 잘 안 간다. 단 음료수 싫어하고, 커피는 좋아하는데 카페인이 안 받는다. 밤 샐 각오가 된 날만 마신다. 채식 지향인은 거를 게 많아서 돼지런한 식사도 어렵다. 가장 자주 사먹는 건 마라샹궈인데, 그나마도 단골집 맛이 변해서 집에서 해 먹는 게 더 맛있다. 비건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같이 갈 친구가 없다. 현실은 편의점이다. 수입맥주 4캔 만원, 훠궈맛 컵라면, 햇반 강된장보리컵밥... 이런 거밖에 먹을 게 없다 파주에서는.

넷째, 자취 안 한다. 부모님 집에 산다. 숨쉬는 비용 0원이다. 이게 진짜 크다. 나가 살고 싶을 때가 당연히 있지만 비굴해도 참는다. 지금 나가면 답 없다. 독립해야 어른이라고 착각할 때 있었는데, 독립해도 돈 없으면 어른 아니다. 

다섯째, 여행 안 좋아한다.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가는 거지 나 혼자 떠날 만큼 좋아하진 않는다. 무거운 가방 메면 현관문 나서면서 지친다. 그리고 굳이 탈출하고 싶은 일상이 없다. 매일이 지루해지려고 할 때 잔잔히 들쑤시는 걸 잘한다. 뜬금없이 삭발을 한다든가... 리프레시할 방법은 많은 것 같다.

여섯째, 간간이 부업 했다. 직장생활과 부업을 병행하는 게 돈 모으기에 안성맞춤이다. 돈 샐 틈이 없다. 주말에 싸돌아다니면서 돈 쓸 시간과 체력을 쪽쪽 뽑아 간다. 당연히 수입도 쪼끔 느는데, 화도 같이 늘어서 술값으로 쓰는 돈이 훅 뛰었다.

지금 세상 잘지내고 있는데, 백수 멘탈케어는 돈 있으면 해결되는 거였다 참 나... 다음에는 보컬 레슨과 그밖에 몇 안 되는 돈쓸 구석에 대해서도 써 놓도록 하겠다. 원체 씀씀이가 작아서 박봉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남았다. 쓸 데도 없으면서 돈에 목맬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든다. 아등바등 일하고 많이 버는 건 그만큼 많이 쓰고 싶은 사람들이 하면 된다. 비교해봐야 의미 없다. 다 자기 그릇이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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