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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이제서야 뜨는군

https://youtu.be/VgZJnNLOKDw


아악
이 영상 보고 헨드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 잘 지내나요? ㅠ

3년 전쯤 나는 이집트에서 온 헨드 언니하고 수업 끝나고 맨날 붙어 댕겼더랬다. 내가 학부생조교로 있던 교수 랩실에 언니가 대학원생으로 들어와서 처음 만났다. 아랍어가 네이티브고 한국에선 영어로 의사소통했다. 살면서 영어로 말해야 하는 친구는 언니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실 아쉬는지? 교수 욕은 영어로 하는 게 아니라 느낌적 느낌으로 하는 거다. 뭐 언어의 장벽? 그딴 거 없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내가 랩실을 나오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졸전 때문에 바빠서 한동안 못 보다가 요샌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일 년도 더 됐다. 자기한테 뭐 서운한 게 있냐고 물었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얘기다...

언니가 집안 사정으로 잠깐 이집트에 가야 했는데, 마침 날짜가 기숙사 퇴소랑 겹쳤다. 그래서 나한테 자기 대신 한국에서 자취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공릉에선 자취방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서 흔쾌히 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언니가 직방 어플에서 자기가 점찍어 둔 방을 보여주면서 시작됐다. 부동산들에 연락해 보니 되는 방이 하나도 없었다. 영상이랑 똑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뿐이었다.

언니, 1번은 그 가격 안된대. 2번은 벌써 나갔대. 3번은 지금 당장 입주해야 된대서 어렵겠지, 4번은 알아보고 다시 연락 준대. 5번은 월세는 안 되고 전세만 된대.

나는 시세보다 너무 저렴한 곳들이라 페이크일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업자들과 직접 통화해 보니 말을 빙빙 돌리고 된댔다가 안 된댔다 하는 거에서 촉이 딱 왔다.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영어로는 이 쎄함까지 전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래서 안 된대 저래서 안 된대 하는 단순 내용전달뿐.

생각해보면 허위매물이 나 훼이크입네 써붙이고 다닐 리 없는데, 당시엔 나도 세상물정 앎에 자신이 없어 질질 끌려다녔다. 이 고통을 알리 없는 언니는 사진도 있고 주소도 있는데 왜 허위매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며, 누가 먼저 좋은 집을 채간 거라면 다른 집에 연락해봐달라며 추가로 300/30에 비현실적으로 쾌적한 올화이트 원룸만 열몇 군데를 찾아 왔다.


결국 나는 직방 양아치들과 몇 날 며칠 통화하다 완전히 지쳤다. 결론부터 말하면 언니는 다른 대학원생 오빠가 살다 넘겨준 방에 살게 됐다. 그저그런 대학가 원룸.

읍읍... 이럴거면 방 빼는 친구들 집 중에 더 싸고 좋은 집 많았는데 뭐하러 그 고생을 했나, 말을 하지...!

그러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멋있게 해결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과 내가 쓴 시간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생긴 화가 뒤죽박죽 뭉쳐서 응어리졌다. 말 안 통하는 사람이랑 노는 거에 커다란 벽을 느껴버렸다. 헨드 언니는 알 리 없지만... 돌이켜보면 이 일 이후로 멀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아무튼 직방놈들이 장난질만 하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는데!

휴...잊고 있던 울화통 뚜껑을 저 영상이 열었다. 댓글 보니까 나만 기만당한 게 아니네. 마음 같아선 언니한테 저 영상 보여주면서 내가 이런 고생을 했었다고 실컷 하소연하고 이제 와서 뒤끝 오지게 부린 거 민망해하면서 다시 살뜰하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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