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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복도 참 망치

나는 스스로 유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제일 큰 이유는 아직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뭔지 잘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몇 해 전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울 엄마가 우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어른들을 만나고 술과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던 게 내가 아는 죽음의 전부다. 슬픔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무지하다. 특별히 많이 울거나 아파본 적이 없어서다. 운 좋게도 불행들을 요리조리 비껴 가며 평탄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마음 어딘가가 뻣뻣하고 둔하다는 게 내가 아는 나의 여러 못난 점 중 하나다.

그랬는데 망치를 만나서 여러 마음을 새로 배운다. 망치는 반 년쯤 전부터 돌보기 시작한 길고양이다. 꼬리가 뿅망치처럼 꺾여 있어서 망치라고 불렀다. 이름을 부르면 귀신같이 나타나서 통조림을 줄 때까지 애교를 부렸다. 그 때 망치는 둥그렇고 건강했다. 긴 적응 기간을 끝내고 집에 들이기로 결심한 날, 동물병원에 데려가던 길에 망치는 박스를 박차고 탈주했다. 아찔하게 차길에 뛰어들더니 6차선 대로 너머로 달아났다. 그랬던 망치는 꼭 일주일만에 돌아왔는데, 온 몸에 썩은내를 풍기면서 핏자국이 묻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당장 망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단 결과 일주일 새 교통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골반이 부러지고 장기가 뭉개지며 살이 썩어 악취가 났고 큰 수술을 해야 했다. 수의사는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라 길고양이라는 말을 듣고는, 수술비가 아주 많이 들 거라는 말과 함께 안락사를 권유했다. 몇 군데 병원을 돌아다녀도 대답은 비슷했다. 하지만 이미 정이 들 대로 든 망치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나만큼이나 울 엄마와 동생이 망치를 아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다. 빈털터리 주제에 주둥이만 산 나와 달리 직장인인 둘은 턱하고 큰돈을 내놓았다. 수의사 말대로, 키우던 고양이도 아닌 길고양이에게 쓰기에는 비현실적으로 큰 돈이었다. 새삼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둘 덕에 돈 문제로 망치를 안락사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안락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수의사가 제안했던 그 시점에 망치를 보냈을 거다. 그러고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그렇게 동생과 엄마 사이에 끼어서 또 한 번 슬플 고비를 넘겼다. 수의사는 수술을 하더라도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망치를 안락사하지 않겠다는 건 우리 사이에 이미 결정된 사실이었다. 설령 수술이 순전히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한들 상관없었다. 망치를 안락사로 보내고 괜찮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더 큰 욕심이었으니까.

그날 밤 나는 망치가 든 개조 리빙박스를 옆에 두고 침대에 누웠다. 뚜껑을 열지 않았는데도 썩은 냄새가 온 방에 진동했다. 새벽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망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말짱하고 생생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망치는 풀쩍 뛰어서 침대로 올라와서는 내 발목에 머리를 괴고 스르르 잠들었다. 코가 없어질 것처럼 썩은내가 나서 꿈이 아닌 걸 알았다. 나는 망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을 소근소근 했다.  

날이 밝고 망치는 수술을 했다. 그게 4월 20일이었으니 오늘로 꼬박 한 달이 되었다. 망치는 아직 퇴원을 못 했고 누적 병원비는 오백만 원을 넘겼다. 상태가 좋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나빠졌다. 어제 급하게 면회를 부탁한 담당 선생님은 응급상황이 오면 바로 CPR을 해도 되겠느냐고 동의를 구했다. 수술방에 누운 망치는 가만히 떨고 있었는데 무어라 말하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망치가 고양이별에 갔다는 소식을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망치가 잘 나아서 집으로 오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아무튼 망치에 관해서는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망치 덕에 많이 배웠다는 것. 의료보험은 왜 필요하고 돈은 왜 벌어야 하는지, 사람들은 왜 신을 믿는지, 혼자면 불가능하고 여럿일 때 가능해지는 일이 뭔지, 모른다는 것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지. 책을 아무리 읽어도 와닿지 않던 것들이 바로 이해되었다. 그래도 아직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울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세련된 태도인지 같은 건 모른다. 망치가 잘 돌아오면 신나서 이 카테고리에 새 글을 열심히 쓸 건데, 잘 돌아오든 못 돌아오든 지금까지만큼도 충분히 고맙다. 망치 덕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p.s 그리고 훗날 내가 죽었을 때 외할아버지하고 망치가 같이 마중 나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생각만 해도 귀엽고 웃긴 그림이다. 그 때 나는 망치가 탈주하지 못하도록 박스를 꼬오옥 닫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