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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대략 영화 <기생충> 에 꼽등이 나오는 거 칭찬하는 글


 

 

영화 <기생충> 초반에 나오는 장면. 기택(송강호)이 가족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밥상에 갑자기 꼽등이가 나타난다. 기택은 "으, 곱등이."하면서 하루이틀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튕겨버린다.

정식명칭은 곱등이가 아니라 '꼽등이'인데 어쩐 일인지 모두가 잘못 부른다는 바로 그 곱등곱등 등판!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기생충>과 꼽등이는 아주아주 비슷한 점이 많고 잘 어울린다. 영화관에서 볼 땐 아아닛 그렇게 세게 때리면 우리 애가 아프잖아욧! 하긴 했지만 모든 영화에서 곤충은 으레 고통받는 관계로(말레나...흐즈믈르그했즈느요...)이 정도는 눈감아준다. 

 

잘 어울리는 이유 첫째. 꼽등이는 대표적인 기생충(연가시)의 숙주로 알려져 있다. 곧 박사장에게 기생하게 될 기택의 식구들을 암시하는 영화적 장치로 잘 어울림.

근데 자연에서 연가시가 꼽등이한테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음. 사마귀나 여치, 잠자리에서 훨씬 많이 나옴. 연가시에 감염되는 경로 때문임. 연가시 알은 물속에 있다가 하루살이같은 자잘한 벌레한테 일단 먹힌 다음, 멋모르고 하루살이를 냠냠한 포식자 육식 곤충 뱃속에 정착해서 성체로 자람. 포인트는 갓 잡은 사냥감을 싱싱할 때 뜯어먹어주는 곤충이어야 연가시도 무사히 환승할 수 있다는 점!

벗 우리의 꼽등이는 생긴 것만 살벌할 뿐 실제로는 사냥은커녕 썩기 시작한 사체나 주워먹는 찐따 곤충임. 고로 꼽등이한테 먹힐 즈음에는 이미 알 신선도가 저세상일 확률이 높겠쥬? 그런데도 연가시X꼽등이 조합이 미친 듯이 널리 알려진 건 2009년을 기점으로 꼽등이가 극혐곤충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며 퍼진 오해인 걸로 보임.

 

둘째. 영화 속 '기생충'들은 저택 지하에 숨어 살지만 딱히 이렇다할 피해는 주지 않음. 다만 몰골이 흉측한 탓에 끔찍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임. 꼽등이의 생태도 딱 그렇다. 딱히 병원균을 옮기거나 시끄럽게 울어대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님. 조용히 어둡고 습한 곳에 살면서 썩은 나뭇잎이나 곤충 사체를 먹고 살 뿐임. 그런데 어쩌다 사람들 눈에 띄면 징그럽다고 경끼를 하고 갖은 미움을 다 받고 죽임을 당함. 

덧붙여 꼽등이가 극혐인 이유로 유명한 게,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지도 않고 되려 사람한테 뛰어든다"는 내용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꼽등이가 눈이 나빠서 생긴 일이기는 하지만 기택도 신변이 노출되었을 때 박사장에게 뛰어들게 됨. 

 

아무튼 꼽등이는 영화 속 세계관의 축소판이면서 동시에 기택(과 그의 식구들)의 존재론적 입장을 잘 대변해 주는 곤충임. 사스가 봉테일. 궁예하기에 내러티브 없이 곤충을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을 표현하는 소품 정도로 여겼다면 아마 꼽등이보다 바퀴벌레 쪽이 더 자연스러움. 더 유명하고 개체수도 많고, 사람 먹는 음식에 달려드는 것도 꼽등이보다는 바퀴니까. 그런데도 굳이 꼽등이다? 벌레 덕후 직감상 이건 뭐 볼 것도 없이 노렸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음. 갓갓 봉준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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