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구생활/전시

<잠금해제> 본 후기 : 너무 무섭다!

 

<잠금해제> 전시는 무서웠다. 작게는 그 유명한 *나선 계단* 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온 일 때문에, 크게는 내가 나선 계단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그 유명한* 나선 계단이라고 요란스럽게 써붙여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몰라볼 정도의 뻣뻣한 관조자라는 게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이때껏 기념화된 모든 것에는 늘 가이드가 따라붙어 왔던 터, 내가 온 이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 아니라 민주인권기념관인 이상 얼마간은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안일하고 게을렀다.

누가 와서 설명해주고 떠먹여주기를 기다리는 게 습관이다. 95년생인 나는 감사하게도 87년을 가르치려는 선하고 의욕적인 선생님들을 여럿 만나 많이 배웠다. 사람이 죽었고 국가가 은폐했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느낀 건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늘게 떨리던 선생님의 목소리'지, '잊으면 안 되는 무엇'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잠금해제>가 재밌고 의미있었다. 다름아니라 냅다 무서웠기 때문에. 좀 더 멋있게 말하고 싶어서 며칠 망설이다 그만뒀다. 생각할수록 역사화된 사건을 현재화한다는 기획 의도에 이보다 부합하는 감상이 없다. 내 경험을 갖는 것. 평화로운 전시장에서 문득 느끼는 공포이니 당연히 실제의 티끌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아무리 유치하고 미약해도 그건 내 감각이었다. 누가 정해둔 게 아닌 각자의 경험을 얻어 가는 것, 예술이 역사적인 장소에 개입해서 얻는 효과란 이런 게 아닐까.

 

 

작품 중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 무섭게 다가오는 경험이 흥미로웠다. 그런 의미에서 부속건물 식당에 설치된 언메이크랩 작업이 제일 재밌었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터치패드를 두드리고, 그럴 때마다 녹음된 물소리가 식당 스피커로 울려퍼지는 작품. 어쩐 일인지 머리까지 물에 푹 잠긴 느낌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 건물도 아닐 테고 식당은 고문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공간일 테지만 논리에 앞서 감각적으로 무서웠다. 두 번째 갔을 때 교수님은 넌지시 "건물 관리인께서 그 수도꼭지는 아무리 공사를 해도 잠기지가 않더래요. 항상 똑똑 물이 새더래." 하며 으스스함을 +1 하셨다.

일상의실천 작업들로 '빨갱이'를 쓰는 오늘날 웹의 문장들을 모아 보면서 그 단어를 개그코드로 생각했던 내 언어 습관도 돌이켜보게 되었다. 공문서상 용도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최대한 건조해 보이게 적은 잭슨홍 간판도 무서웠다. 아쉬웠던 점은 간혹 빨간색이 납량특집처럼 보이는 상황이 생겼던 것. 방문했던 날 해가 좋아서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볼 땐 멋있었음. 이상 전시 유잼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