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구생활/전시

므찐 곳: 비트라 캠퍼스 Vitra Campus

어제 프푸에서 오는 기차 안 군것질거리로 시작...리들에서 Physalis 꽈리 같은 걸 사먹었다. 어떤 알은 금귤처럼 새콤달콤하고 어떤 알은 파프리카처럼 뭔가 고추 같은 맛이다. 

비트라 캠퍼스는 독일 남쪽 끄트머리 바일 암 라인에 있다. 이날 숙소는 스위스 루체른이라 일찍 조식 먹고 남쪽으로 갔다. 

비트라 쇼룸은 아빠랑 혜나도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갔다. 네비 찍는데 주소가 찰스 임스 스트라쎄여서 오 했다.

주차장은 알바로 시자 프롬나드!

므찐 것... 바깥 풍경이 깡패다.

병났는지 링거 맞고 있는 몬스테라. 자랑하고 싶은 멋진 공간이다. 근데 사진 찍어온 거 보고 다시 느끼는 거지만 내 특징은 물욕하고 연관된 곳에서 항상 재미가 없어... 

건물은 헤르조그 & 드 뫼롱 작품. 집같이 생긴 매스 단면이 특징적이다. 기프트샵에서 단면 모양을 활용한 포스트잇과 공책을 팔고 있었다.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건물이 멋지니까 괜찮다. 아, 혜나가 뭔 독일어 음료수를 시켰는데 장군풀 주스였다. 뭔가 했더니 리네아(어렸을 때 최애 책 주인공. 내 자연친화적인 정신세계 구성에 지대한 영향)가 해먹던 거! 새콤하고 신선한 맛이었다. 

여기가 프랭크 개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1989) 6-70년대 나이트클럽에 대한 전시 중이다. 춤추고 노는 게 다가 아니라 반문화와 예술적 실험의 성지로 재조명받고 있다고. 우리나라도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투명풍선과 누드>가 처음 발표된 곳이 다름아닌 쎄시봉이었던 걸 생각하면 느낌 알겠다. 재밌는 전시였다. 70년대 나이트클럽 인테리어가 지금의 클럽은 물론이고 패션쇼장, 피트니스 센터로까지 분화된 과정이 신기했다.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실제 시공된 장소의 사진과 영상까지 볼 수 있어서 완전 귀한 구경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포스터도 다 진짜다. signed reprint 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추가 에디션 찍은 건가? 그럼 전에 모 전시에서 본 포스터, signed 표시 없고 (아마 원작자가 허락했을 리 없는)구린 인쇄 품질의 포스터는 불법복제인 건가? 아무튼 이 전시에서는 개인 컬렉션 소장품이든, 다른 미술관에서 빌려 왔든 리프린트든 구체적인 출처가 명시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파올리나 B라는 70년대 클럽의 포스터와 실제 모습. 기둥 생긴 것도 딱 고대 그리스 오더다.

클럽 음악을 시대순으로 들어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환상적이다.

덩실덩실 


재밌는 나이트클럽 설계안도 봤다. 

앗 이거슨 터널..!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1998년 지어진 B018이라는 클럽이다. 벙커처럼 지하에 있는 곳이라 낮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밤에 클럽 조명 밝히고 뚜껑을 열면 그 때부터 존재감을 뿜뿜한다고 써 있다. 뚜껑 안쪽이 거울이라 화려함이 두 배라고. 검색해 보니까 지금도 영업한다.


밖에는 재밌게 생긴 미끄럼틀이 하나 있다. 살 안 쓸리게 포대자루 같은 것도 빌려 준다.


소방서! 옛날에 여기 있던 비트라 공장에 불이 났는데, 시골이라 소방서가 없어서 몽땅 다 타버리는 바람에 피해가 막심했다고. 그래서 비트라 캠퍼스를 신축하면서 1순위로 고려된 게 소방서였다고 한다. 자하 하디드 작품. 


안쪽에서는 <The Original>이라는 전시 중이다. 

네 벽면이 다 기울어져 있어서 수평을 어디다 맞춰야 할 지 모르겠는 것...그치만 예상보다 얌전했다. 비트라 소방서를 검색하면 기울기가 심하게 과장된 사진이 많다. 찔릴 것처럼 뾰족하고 자극적이고 멋져 보이는 사진. 나도 예전에 PPT 만들 때는 그런 사진들을 주워다 썼었다. 실제로 와 보니까 그건 지나친 광각렌즈 왜곡 빨이고 실물은 훨씬 안정적이다. 2시간짜리 아키텍처 투어를 신청하면 곳곳을 자세히 둘러볼 수 있는데 나는 일반관람이라 전시실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Originals do not simply get older - they become more beautiful. 자부심이 느껴지는 전시 설명. 비트라 제조 의자를 분해해서 파츠들을 낚싯줄로 공중에 띄우는 식으로 디피했다. 부품 하나하나 마감이 정말 깔끔했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위글 사이드 체어. 진품 의자에 앉아서 전시를 볼 수 있는 좀 특별한 체험? 구조적으로 안정되고 내구성이 좋다는 설명이지만 앉아 보니까 기우뚱거리고 수평 방향으로 불안한 것,,,골판지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원래 계획은 비트라를 보고 바젤로 넘어가서 팅겔리 뮤지엄까지 보고 루체른으로 갈 계획이었다. 비트라에서 볼 게 이렇게 많은 걸 모르고 짠 불가능한 스케줄이었다. 이 날 낮 시간은 온종일 비트라에서 보냈다. 봐도 봐도 볼 게 남아서 개 행복했다. 다음은 비트라 스차우디포 Vitra Schaudepot. 여기도 헤르조그 & 드 뫼롱 작품.

날씨 짱 좋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건 관람하기가 너무 편하다는 거였다. 첫째, (이미 골라서 가져온)전시품도 한번 더 큐레이션되어 있다. 일련번호 옆에 ☆과 ☺ 표시를 이용해 꼭 봐야 할 작품을 표시해 뒀다. 둘째, 텍스트가 없다. 작품 근처에는 작가도 작품명도 없이 #일련번호뿐이다.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선택적으로 랙 하단의 캡션을 읽으면 된다. 상세설명은 전시장 말고 리플렛과 모바일페이지에 있다. (별로 안 궁금해도 뭔가 써 있으면 읽어야 하는 병에 걸린 나같은 사람은 이 배려 덕에 에너지를 엄청 아낄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 또...그냥 보기 편하다. 실험실 느낌의 밝은 형광등이라 색감과 세월의 흔적이 가감 없이 보인다. 3단 랙으로 밀도 높게 쌓여 있어도 높이와 각도가 잘 계산되어서 관찰하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디자인사의 아이콘들. 와 내가 이걸 실제로 보다니!

깔끔한 캡션


중간 통로에서는 론 아라드 기획전 중이다.

워 멋있다.


어딘가 아이도루의 뮤비에서 봤을 것 같은 의자. 에에로 아르니오, 1963

나는 이걸 분명 카림라시드 전시에서 봤는데 이름이 왜 다른 사람이지?? 찾아보니까 카림라시드네 집 거실에 있는 의자였음. 이탈리아 가구 회사 구프람Gufram의 Studio65 작품.

필립 스탁 고스트 체어. 카페 밥집 가면 젤 흔하게 있는 디자이너 의자인데 아무 표시도 없어서 뭔가 서운하구먼


지하층도 있는데 수장고 엄청 커서 흐엑 했다. 하지만 이 뮤지엄은 정도를 안다. 저길 들어가게 해 줄 필요까지 없이 이만큼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는 거슬...


기프트샵. 갓 퀄리티의 의자 미니어쳐를 팔고 있다.

헙 퀄리티다운 가격이다.


날씨 너무 좋고 키야아

바일 암 라인 역까지 걷는다. 

바젤 중앙역 가는 표 못 끊고 기계 앞에서 땀 삐질삐질 하고 있으니까 독일 아저씨가 또 도와 줬다. 친절하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