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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합리적 인간은 칭찬을 3초 안에 잊는다.

중년의 수학 선생은 먹구름처럼 담배 쩐내를 몰고 다녔다. 맨 앞줄 애가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선생은 못 본 체했다. 이따금씩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로 허공에 외쳤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선생과 우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이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애들은 거의 무시했다. 어수선히 떠들거나 자거나 PMP를 만지작거렸다. 선생은 알고도 화내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우릴 조용히 시킬 뿐이었다. 그걸로 당신이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남은 시간 동안에는, 신기하게 그 선생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무시했다. 책에 고개를 처박고 연습문제만 주야장천 풀어 대는 게 그거였다. 떠들든지 말든지 듣든지 말든지. 선생은 선생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를 보이콧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거기까진 뭐 괜찮다. 그런데 끝종이 치고도 칠판에 붙어 계시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나는 선생이 싫었다.

여름방학 보충 때였다. 방학식을 버젓이 해 놓고 보충이랍시고 학교를 또 오라니 씨발 말도 안 돼. 욕하면서도 애매하게 착해서는 꾸역꾸역 왔다. 아침부터 퍼붓는 집중호우를 뚫고 겨우 학교에 온다. 문 닫고 에어컨을 튼다. 젖은 양말은 벗어서 사물함 위에 널어 놓고 맨발로 삼선 슬리퍼를 신는다. 선생은 늘 그랬듯 혼자 떠든다. 밖은 천둥번개가 난리다. 선생은 코시 슈바르츠 어쩌구 한다. 선풍기 바람이 솔솔 분다.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꾸벅꾸벅 눈이 감긴다.

그 때였다. 찍 하고 물이 튀었다. 선생이 뒤돌아 있을 때 누가 물총을 쏜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조준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몰래 갖고 놀다 선생 어깻죽지에 확 튄 거겠지. 

선생은 판서를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순간 교실에 천금 같은 정적이 흘렀다.

...라고 써야 자연스럽겠는데. 아니었다. 아무도 선생한테 관심이 없었으니까. 교실은 그냥 평화롭고 어수선했다.

그리고 선생은 놀랍게도 자기의 축축한 셔츠마저 무시했다. 엄지로 입꼬리에 허옇게 붙은 침을 닦아내고서 아무도 관심 없는 수업을 꿋꿋이 이어 나갔다. 맨 앞줄에서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본 내가 가장 크게 동요한 사람 같았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선생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 해 2010년에는 처음으로 교원평가제가 도입됐다. 교원평가가 교권 침해다 아니다 선생님들끼리도 갑론을박이었던 시기. 우리는 최초로 '아래 인터넷 주소로 접속해서 선생님을 평가하라'는 가정통신문을 손에 쥐었다. 선생님을 채점한다니. 괜히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는 불쌍한 선생의 주관식 답변란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 항상 열심히 수업해 주시는 거 알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안 그래도 충분히 안 좋아 보이시는데 말야. 딴 애들은 속없이 잔뜩 욕을 적어 낼 게 눈에 선하잖아. 나라도 좋은 말 해야지. 나는 선생은 선생대로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깔보면서 알량한 우월감을 착복했다. 남을 기만하는 느낌이 뿌듯해 속으로 킬킬 웃었다. 내가 이런 생각인 걸 누가 알겠어. 결과적으로 말 이쁘게 했으니까 됐잖아.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지금도 변함없다. 결과적으로 선하게 행동했다면 동기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내 뻔뻔한 속내를 그 쩐내 풍기는 선생이 알 리 없다는 사실이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상대가 나의 진심을 알고 싶어하지조차 않을 거란 점도 되새겨야 한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알 수 없는 것이 알고 싶어 애태우는 일에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자, 우리는 합리적 인간이지요? 피차 예쁜 말 오갔으니 이만 마무리합시다.

칭찬은 인간관계의 의례일 뿐이다. 듣고 나서 3초 이내에 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칭찬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커다란 기쁨이 아닌가요? 타인의 진심이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끊임없는 의심 속에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야말로 나쁜 일이 아닐까요?

칭찬이 의례라고 해서 기뻐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것이 치욕스럽다는 뜻이다. 내가 행복해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으면 한다. 내가 선택적으로 승인한 칭찬. 내가 보기에도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야 기꺼이. 이것은 불행해지는 일이 아니다. 행복의 판단 주체가 나 자신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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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를 단단하게 두르고 흔들리지 않는 인간 되고 싶어서 쓴 글

이거 쓴 때가 졸전 막바지 으쌰으쌰 분위기로
작업실에 격려 조의 아무말 칭찬 러시가 난무했었다.
근데 정신 차려 보면 빈말인 걸 알면서도 진짠가?ㅎ 싶고 설레어 하는 내가 우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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