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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청춘의 반을 함께한 추

억이 있어 너와 나 우리 함께 소.. 그렇다 내가 새내기 헌내기 3학년 1학기까지를 영혼까지 털었던 그 동아리 (*주의: 라떼 파티)

진짜 새내기땐 선배들한테 칭찬 한 마디 들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노래하면 착착 반주가 들어오고 화음이 맞는 것도 신기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다 기깔나게 피아노치는 수진언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진짜..당연한 줄 알았지. (젤 의미없는 말인데 이 글의 주제임)

헌내기 되자마자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그 자릴 대신했다. 난 노래도 악기도 딱 나 재밌을 만큼밖에 못함. 뾰족히 할 줄 아는 건 없으나 아무튼 동아리의 의미 있는 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무척 열심히 했었다. 잠깐은 그 자리에 있어본 것도 같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연습 가기가 싫어. 이건 뭐 재미도 없고... 욕심 던지고 방청객으로 전직한 게 지금이다.

집부 땐 내가 대단한 일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소사는 웃긴 게 화석선배(=실세) 두고 2학년만 집행부를 한다. 그러면서 *기수제*라고 새내기한테 존댓말 들으면서 선생질 하는 포지션을 맡긴다. 나도 쥐뿔도 모르는디 애들한테 뭔갈 가르쳐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애들은 나만 보고 있고. 능력 있는 화석선배들은 지 꼴릴 때만 동방에 나타나서 아쉬운 소리하지. 실력으로 까긴 민망하니까 괜히 연습에 불성실하다고 꼽 줬다. (흑역사)

그때 고민했던 건 "잘하는 게 중요한가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가"였다. 지금이야 즐거운 게 장땡이라고 할 거지만 그때의 나는 단언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그랬다. 선배들은 잘하는 애들만 점찍어서 같이 공연하자고 했고 그 러브콜 횟수로 애들 사이에 서열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잘하는 애들하고만 팀 하면 편하니까 좋은 거까진 괜찮다 쳐. 나는 노골적으로 그걸 티냈다. 정말 잘못했다. 그때는 당연한 줄로 알아서 미안한 줄도 몰랐다.

 

한번은 한 화석선배가 외부 공연을 준비하면서 같이 공연할 애들을 차출 비슷하게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두명이 아니라 집부의 절반 정도를 데려가게 됐다. 그래 놓으니 묘하게 우등반과 열등반처럼 되어버렸다. 동기들끼리 편이 나뉘고 감정이 좋지 않게 됐다. 우리끼리 공연 준비하다가 다른 동기들한테 들켰던 날. 나는 그 선배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라고 발뺌했다. 이렇게 된 게 나도 난처하다고 방관하는 척했다. 거짓말. 뒤에서 서열질에 동조하면서 알량한 우월감 즐겼던 건데. 동기 몇 명은 '그 선배도 일을 이렇게 진행해서는 안 됐다'고 얘기했다. 그런데도 난 과잉충성에 눈이 멀어서 동기들이 상처받는 걸 듣고도 모른 체했다. 한 일 년쯤 지나서야 슬그머니 그때 정말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나대려니 나 자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선을 넘겨 매달렸던 거 같다. 심할 땐 전공 세 갤 철회하고 수업 째 가면서 동방에서 밤 샜다. 노래가 안 늘면 이상하지. 가왕전 2등했을 때. 인생에서 제일 노래 잘했을 때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 정도로 하는데 너넨 왜 안 해?' 하는 심보로 연습을 굴리고... 한동안은 남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주제에 엘리트주의자 행세했다. 그땐 즐거웠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후회된다.

동아리 개같은 전통 몇 갤 앞장서서 고친 건 후회 안 된다.

1. 나이가 많아도 기수가 아래면 존대하고 말놓기 금지
2. 정기공연 한달 전부터 새내기 전체 금주령, 공릉에서 술 먹다가 선배 눈에 띄면 무대 안세운다 협박
3. 공연 2주 전쯤 정문 앞 가게들 돌아다니면서 돈 구걸. '저희가 공연비가 모자라서 그런데 단돈 천 원이라도 도와주세요'를 아무 가게나 가서 앵무새처럼...ㅅㅂ
4. 어린이날 신고식. 소풍이라고 속여서 필참시킨 다음 제비뽑기로 1번부터 명동 메인골목에 한 명씩 세워놓고 쌩목으로 노래부르게 하는 이상한 행사

...등 별의별 같잖은 전통이 있었다. 개극혐 군대 문화.

집부 되고서 '시불 해 보니까 너무 개같더라'로 다 안 했다. 집부가 운영 전권을 다 쥐는 시스템이 별로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칼자루 쥔 게 나라면 개 꿀...

'당한 게 억울해서라도 애들한테 꼭 돌려줄 거'라던 동기 한 명하고 손절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런 말을 내뱉는 게 현실에서 가능했었네.

공연 때 1기부터 선배 연락 돌리는 것도 바꾸고 싶었는데 못 바꿨다. 지금까지 남아 있다. 반대한 이유는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 매해 서른 명씩 늘어나는데 곧 감당이 안 될 걸요. 해 보니까 힘들던데요. 화석님들 때보다 제가 전화 돌린 사람이 백 명이나 더 많거든요. 근데 나 혼자 빼액거려봐야 역부족이었다. '전화로도 안 오는데 문자 해서 오겠냐', '고기수 형들하고 그나마 있는 유대관계가 짧게 후배 목소리 듣는 건데 그걸 못하냐', '그거 없애면 큰일나'

차마 그 땐 하지 말자고는 말 못하고 이래저래 머릿수를 줄일 방법을 제안했었다. 지금은 나도 짬킹이라 후배 초대 전화 받는 입장이 됐다. 되어보니 더 연락 안 해도 될 것 같다... 날짜야 인스타에서 보면 되고, 가도 내 동기 칭구들이랑 가지 새내기한테 온 연락 받고 갈 일은 없을 텐데. 공기처럼 있는 선배 눈치 보느라 못 바꾸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해 주는 것도 없는 졸업생 선배들을 왜 챙겨야 하는지를 이해 못하겠다. 포인트는 '해 주는 것도 없는' 선배들. 동아리 돈 모자라서 쩔쩔매는 거 알면서 도와주지도 않으시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화석 오빠든 언니든 하나같이 기분 상해 했다. 공연에 와 주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냐, 네가 어려서 그래, 선배 입장 되면 생각 바뀐다. 너 나 졸업하면 나한테도 그러겠다? 

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해 주는 것도 없는' 선배는 안 챙겨도 된다. 그러니까 챙김 받고 싶으면 '해 주는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론 해 주는 선배도 굳이 챙겨야 하나 싶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데.) 어차피 애들은 당분간은 계속 연락할 테고, 신경써 주는 것도 다 일인데 그에 대한 대가는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어쨌거나 내가 사랑하는 건 '내 청춘의 반을 함께한 추억'이지 동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일면식도 없는 새내기들을 응원하고 귀여워하는 것도 결국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좋은 거지. 내가 애들한테 돈 좀 보내자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새내기 때 스폰 구걸하러 다니던 게 트라우마라서 선배님덜... 그 때의 추억이 소중하다면 그 때 힘들었던 것 개빡쳤던 것도 좀 기억해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