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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줄근한 여행기

베를린 놀러다니기 2: 화방, 텃밭, 폐역 개조 미술관

에어비앤비 호스트 언니가 밤에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나 불렀는데 SNS알못인 내가 페북 쪽지를 확인하지 않아서 불발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꿀잼 대어를 놓쳤다. 그래도 잘 쉬었음. 큰 집은 아닌데 채광이 깡패인 집이었다. 

이 날은 저녁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캐리어를 정리해서 중앙역 코인라커에 넣어 두러 갔다. 지하철만 타다가 버스를 처음 탔다. 버스 티켓 사는 법을 몰라서 당황했다. 표 검사는 안 한다지만 사긴 사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 티켓 발권기가 없었다. 베를린 버스 타는법. 일단 탄다. 기사한테 Can I buy a ticket? 하고 목적지 말한다. 얼만지 알려 주면 돈 내고 티켓 받고 당케쇤~ 


베를린 중앙역 앞에서 뺙뺙거리는 어린 새를 봤다. 가시깃 그득한 둘기 유조 같다. 다친 데는 없는데 날지는 못하는 게 이소하다 낙오된 건지, 주변에 부모 새도 안 보이고 대로변 횡단보도라 로드킬이 걱정되었다. 으음 그치만 건강해 보이니까 살 팔자면 알아서 잘 살 거야.


(*2019. 9. 26. 추가 이 새는 유럽찌르레기Sturnus vulgaris다.)


가방을 짱박아 두고 Moritzplatz 역으로 옴. 첫 번째 목표는 모듈러. 남대문 알파같은, 베를린에서 제일 큰 문구점이다.

파는 물건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랑 별 차이 없지만 깔끔하고 넓고 종류가 더 다양하다. 일본 로프트에선 눈 뒤집혔는데 여기서는 대체로 평온했음. 아래 스텐 수납통 다 쓸어오고 싶었던 거 하나만 빼고... 저 통 뭔가 디앤디에서 쇠 밥공기 쇠물컵 파는 느낌이었다. 흔한 알콜솜 통인데 군더더기 없이 딱 예뻤다.

플라스크 생각보다 비싸다. 중간 크기가 7000원쯤이었다.

크기별 빨판 / 극소형 캔버스(메모지아님) / 컬러 전선.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종이처럼 무게별로 깔별로 파는 아크릴판. 저기서 골라서 들고 가면 안에서 레이저커팅도 해 준다. 신기하게 문구점 안에 컷팅집, 3d프린터 집, 출력소, 액자 제작소가 다 있다.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좋아 보였다.


<한정수량>자투리 아크릴 묶음 10유로!  

이건 우리도 이렇게 좀 팔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색 아크릴 구하기 넘 어렵고ㅜㅜ 웃겼던 건 펀치로 뚫어낸 자투리들도 뷔페처럼 <한정수량 골라담기> 해서 팔고 있었다. 누가 사 갔는지 바닥 드러난 칸이 꽤 많아서 웃겼다. 출판단지에선 마대자루째로 쓰레기인 물건. 생각해보면 재질도 괜찮고 일정한 모양으로 여러 개가 있으니까 싸게 팔면 팔릴지도 모르겠다. 여기선 꽤 비싸게 팔더라. 창조경제...!


구텐베르크국의 스탬프

얇은 유리 메탈 프레임에 식물표본 느낌 있음


모듈러 건너편에 있는 Prinzessinnengarten. 밖에서 보니까 너무 별볼일 없는 공터다. 정말 여기가 맞나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안쪽이 신세계다.

엥 이게 뭐하는데지

...는 정말로 농사짓고 있다(충격) 도시 한복판 공터에서. 상추 배추가 곱게 말고 건장하게 자라고 있다. 벌레도 꽤 있는 게 진짜 유기농인가보다. 뭔가 상상했던 도시농업의 상징적 장소답게 허허 동네 사람들 우리도시 이렇게 멋지답니다 하려는 오버액션이 전혀 안 느껴진다. 여긴 내 땅 난 내 할 일 한다 오든가 말든가 이런 자연스러움... 세운상가에서 오큐파이더시티를 첨 봤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제도 말했지만 힙플은 역시 식물이야 식물

그리고 단아한 둘기

안쪽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허술한 푸드트럭 같이 생겼지만 매우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김. 여기서 기른 유기농 야채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야 날씨도 좋고 오늘은 여기구나 했는데...12시부터 주문할 수 있대서 갈길이 먼 나는 못 먹었다,...또륵

꿀벌하고 말벌의 차이를 알려주고 그 밑에는 뭐라고 쓴거지

프린세스이넨가르텐 공주는 없지만 마법같은 곳이다. 내가 나갈 때쯤 해설사와 함께 온 단체 관람객들이 몇 팀 왔다. 언어는 다 독일어였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도 탐구 대상인가보다.


마지막 목적지 Hamburger Bahnhof 는 중앙역에서 가까운 현대미술관이다. 중앙역 앞 푸드트럭에서 커리부어스트 주워먹고 걸어갔다.

미술관 뜰마다 있는 노린재 약충. 위키 뒤져 보니까 Scantius aegyptius다. 속칭 Mediterranean Red Bug 인거 보면 중국매미 포지션?


여기는 폐역을 미술관으로 쓰는 중이다. 함부르크-베를린간 철도 종착역이어서 이름이 함부르크 반홒이다. 전시실이 진짜 기차역 플랫폼처럼 길고...길고 길다. 

입구부터 팩폭 무엇

소장품 기획전. 요셉 보이스, 백남준 포함해 현대 거장 작품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전시환경도 짱짱이다. 대작 전시실은 운동장만하다. 바넷 뉴먼 집채만한 색면추상을 올려다보지 않을 만큼 충분한 거리가 확보된 시원시원한 크기였다. 온 카와라 데이트 페인팅도 그렇게 여러 개 붙은 거 처음 봤다. 블랙 바탕에 흰 날짜인데, 블랙 색감이 정말 미묘하게 다 달랐다. 인쇄물이나 화면으론 볼 수 없었던 디테일이라 온 보람이 있었다.


대합실에서 플랫폼 넘어가는 통로는 옛 기차역 모습 그대로다. 베를린 아니랄까봐 여기도 발언하는 스티커들로 빈 곳이 없다. 사진엔 Don't feed the dictator. Fuck off Google! 이 숨어 있다. 3일 지내면서 보니까 그래픽이나 고유명사부터 육식 반대, 무지개 젠더 같은 사회적 메시지, 쎾쓰! 아무말! 까지 겁나 다양한 메시지들이다. 

말 많고 지저분하고 눌러앉고 싶은 도시를 뒤로하고 프랑크푸르트 행.


플릭스 기차 빠르고 싼 대신에 덜컹거리고 덥고 창문 열면 귀 터질 것처럼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다. 피곤스쿨,,, 8시쯤 프푸 와서 아빠랑 혜나 만났다.

숙소 근처 독일 밥집. 퀄리티 미쳐버렸다. 독일에 왔으면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고정픽 슈니첼-학센-부어스트 한 집에서 해결했다. 엉엉 너무 맛있어...(앓는소리)

튀겨진 살코기가 와자작 와자작

바삭 안에 육즙 쥬륵 미친것이다.


거의 목구멍에 찰랑찰랑할 만큼 먹음. 그치만 그 때부터 이미 알았다. 이건 신발끈 묶다 토할 때까지 먹어도 한국 가면 더 못 먹은 걸 후회할 것이라고... 아니 이민갈 거야...

그리고 귀여운 혜나님께서는 이틀간 벨기에를 관광하시고 기념으로 오리지널 아스테릭스 초콜릿을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