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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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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영화 <기생충> 에 꼽등이 나오는 거 칭찬하는 글 영화 초반에 나오는 장면. 기택(송강호)이 가족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밥상에 갑자기 꼽등이가 나타난다. 기택은 "으, 곱등이."하면서 하루이틀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튕겨버린다. 정식명칭은 곱등이가 아니라 '꼽등이'인데 어쩐 일인지 모두가 잘못 부른다는 바로 그 곱등곱등 등판!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과 꼽등이는 아주아주 비슷한 점이 많고 잘 어울린다. 영화관에서 볼 땐 아아닛 그렇게 세게 때리면 우리 애가 아프잖아욧! 하긴 했지만 모든 영화에서 곤충은 으레 고통받는 관계로(말레나...흐즈믈르그했즈느요...)이 정도는 눈감아준다. 잘 어울리는 이유 첫째. 꼽등이는 대표적인 기생충(연가시)의 숙주로 알려져 있다. 곧 박사장에게 기생하게 될 기택의 식구들을 암시하는 영화적 장치로 잘 어울..
인간 민트초코 그분 그 교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강생이란 이런 부류인 것 같음.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는 것까지 수업이다."라고 노예패치 잘 된 사람. 대학 강단이면 올바라야 한다는 판타지 없이 귀 얇고 까라면 까고 로보트처럼 시키는 일 잘 하는 사람. 아마 대학이 취업사관학교일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교수님인 듯. 애들이 자신을 스승으로 존경하는 게 아니라 자리가 권위인 걸 스스로 잘 아는 사람. 그러므로 점수에 목매는 애들을 5분에 한 번 꼴로 욕하면서 누구보다도 점수로 애들을 부리는 사람.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강의가 공감을 얻고 재밌었으면 가산점 따위로 옭아매지 않아도 알아서 잘들 따라올 텐데, 애들이 집중 안 하고 자고 딴 짓 하는 것에 본인 과실은 조금도 없으시다고 생각하는 건지. 맨 앞줄 모범생이..
나는 복도 참 망치 나는 스스로 유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제일 큰 이유는 아직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뭔지 잘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몇 해 전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울 엄마가 우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어른들을 만나고 술과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던 게 내가 아는 죽음의 전부다. 슬픔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무지하다. 특별히 많이 울거나 아파본 적이 없어서다. 운 좋게도 불행들을 요리조리 비껴 가며 평탄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마음 어딘가가 뻣뻣하고 둔하다는 게 내가 아는 나의 여러 못난 점 중 하나다. 그랬는데 망치를 만나서 여러 마음을 새로 배운다. 망치는 반 년쯤 전부터 돌보기 시작한 길고양이다. 꼬리가 뿅망치처럼 꺾여 있어서 망치라고 불렀다. 이름을..
응원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미안했다. 친구가 최근에 한다는 일에 대해 들었을 때, 비슷한 게 세상에 이미 널렸는데 그걸 또 하냐고 말할 뻔했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하면서 '의미없(어 보이)는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니' 싶어서 조금 더 감탄한 걸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재깍 뭔가 꼬였다는 걸 느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새 홍익인간 이데올로기가 악성코드마냥 깔렸던 건지. 아무 생각없이 생각하니까 내 머리속에서도 저런 생각이 나온 게 소름 끼쳤다. 얼마 전에 재스퍼 모리슨 전시를 보려고 그가 후카사와 나오토와 함께 쓴 을 읽었다. 둘은 요즘 세상이 디자인 과잉이며 시각 공해라고 혀를 찼다. 난 이제 더 새로울 것도 없는 마당에 무엇을 내놓아야 공해라고 욕먹지 않을 수 있을지 감도..
기본카메라 기본카메라충의 불만: 뷰티카메라가 모든 볼따구를 복숭아로 모든 바닷물을 파워에이드로 만든 걸로도 모자란지 요즘에는 말도 없이 눈을 키우고 턱을 깎더라. 너무 건방짐. 보정 강도를 0으로 해도 딱 보면 내 얼굴이 아님. 유쾌한 척 턱살을 접고 흰자를 뒤집어서 안면인식을 피해 봄. 인간 복숭아를 하느니 그냥 못생길란다.
삭발한지 일 년 된 후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 끝나고 밖에 나왔는데 더운 바람이 훅 불어와서 으으 여름이네. 덥다. 그러고는 단골 미용실에 가서 “저 삭발하려구요.” 했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 별 고민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에머 오툴의 를 그 즈음 읽었던 것, 그 날 여성학 교양 수업에서 “사람이 생기가 있으면 다 예쁜 거지”이 얘길 듣고 ‘그래 내가 생기는 좀 많지’라고 생각했던 것 정도가 동기다. 디자이너 쌤이 진짜 할 거냐고 몇 번 되묻고, 몇 미리로 할 거냐기에 없애 달라고 했다. 평생 볕 못 본 두피와 뒷목이 그렇게 새하얀지 몰랐다. 정수리에 살랑거리는 바람도 난생 처음 느껴 봤다. 지인들이 궁금해 했다. “근데 왜 했어요?” 그냥이라고 해도 대부분 믿지 않았다. “집에 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