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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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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내일은 올해 예정된 마지막 전시 철수다. 졸전 끝나면 앓아누울 줄 알았는데 말짱하게 예정된 것들을 다 잘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졸전 이후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진짜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다. 어쩌다 보니 디자인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졸전 때만 해도 작업에 확신이 없었다. 남들이 좋게 말해 줘도 다 엎드려 절 받기라고 생각하면서 눈 감고 귀 막았다. 지금은 누가 칭찬해 주면 아...그래 좋은가보다...정도는 하게 됐다. 저는 계속 봐서 잘 모르겠는데 암튼 앞으로 더 좋은 거 할 거에요. 그래야지.졸전자 중에 나만 전시를 세 개나 보내 줬다. 세 개가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아무렴 못 나간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못 나가는 게 더 나았을 것도 있었다. 근데 그냥 ..
좆간 좆간 좆간 새로 생긴 조그만 백반집에 갔다. 음악이나 라디오가 일절 흐르지 않는 가게. 손님은 나와 친구 두 명뿐이었다. 우리는 순두부찌개 두 개를 주문했다. 여자 사장님이 요리를 하면서 우리에게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를 했다. 나는 하던 대화를 끊고 그가 하는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이윽고 반찬이 깔렸다. 반찬그릇을 내려놓고 나서도 그는 끊길 듯 끊길 듯 계속 말을 걸어왔고 우리는 계속 잠자코 들었다. 나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조금 집어먹었다. 정갈하고 슴슴했다. 순두부찌개가 이어 나왔다. 자극 없이 자연스러운 맛. 거기까지 괜찮았다.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아유, 웬 왕 벌이 있네." 그리고 손에 신문지를 왕창 구겨들더니 손으로 벌을 덮었다. 아, 좆간이 미안해. 조금만 빨리 봤더라면. 밥맛이 ..
아람 1. 갓 떨어진 아람의 탱글광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며칠이다. 2.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국가 공인 빨갱이입니다." 박태호 교수님은 당신이 쓰신 책 표지만으로 자기소개 PPT를 했다. 페이지 수가 40장에 육박했다.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이에요. 표지도 빠알갛죠? 저는 토마토입니다." 네 토..뭐라고요? 아무도 웃지 않아서 없던 듯 지나갔다. 애들이 '난 토마토지롱'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여러모로 먹먹해졌다. 3. "감옥에 있을 때 사회주의가 망했습니다." 나열된 표지들이 그려내는 지난 삶은 꾸준하고 정연했다. 드라마틱한 좌절과 이상적인 재도약까지, 완벽한 한 편의 자기소개 스토리. 문득 궁금해졌다. 저 사람도 젊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살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지난날을..
으아아아아
등록금 캐시백 돼요? 개강 첫 주 교양 OT. "제 수업은 매주 과제가 좀 있어요. 책도 읽어야 하고요. 부담스러울까봐 걱정이 되지만 도움이 많이 되는 과제입니다. 여러분들 지금은 눈이 초롱초롱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도 힘들 거에요. 그러니 과제 할 시간을 드릴게요. 1시간 보는 수업시간에는 강의실에 올 필요 없습니다. 잠시 여유를 갖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3학점 교양이 2시간-1시간으로 쪼개져 있다.) 세 시간 중에 한 시간은 수업을 안 하시겠다는 말이었다. 느끼한 말로 직무유기 합리화하는 것 봐. 전 돈으로 당신의 시간을 샀는데요. 수업을 안 하신다니, 당연히 등록금 3할은 캐시백 해주시겠죠? 참고로 교수는 현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이다. 올해 총장후보자 선거에도 ..
칭찬 솔직히 너무 칭찬이 듣고 싶다. 근데 막상 들으면 별로 좋지도 않다. 어떻게든 부정하지 못해 안달이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하나도 안 잘했는데." 이러면서 속으로는 '별 거 하지도 않았구만 칭찬을 하네, 저 사람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면서 상대를 깎아내린다. 진짜 왜 이러지. 말로는 '평소에는 얼마나 더 잘했길래 이걸 못 했다고 하냐'는데, 이걸 잘 했다고 생각해줄 정도면 평소에는 얼마나 더 거지 같았던 건지 무섭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했는지 볼래? 이러면서 오합지졸 중에 내가 제일 나았다고 증거를 들이밀어서 반 강제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됐을 때. 아님 분명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았던 경쟁자의 결과물을 우연히 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였을 때처럼 날더러 왜 잘했다고 하는지 납득할 때가 없는 건 아..
백문백답 ☞ 옛날 유행 중에 백문백답이란 게 있었다. 시시콜콜한 질문 100개에 답을 달아서 버디홈피나 싸이에 올리는 거. 요즘 말로 하면 TMI 그 자체다. 인싸도 아니었던 주제에 나는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백문백답을 하는 게 쏠쏠한 취미였다. 텅~빈 운동장에서 외치고싶은 말은 ☞~ 주량(가장 많이 먹고 제정신이 아닌것) ☞~ 복권 1억에 당첨된다면 ☞~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것 ☞~ 시덥잖은 질문 100개에 답을 달면서 가끔은 대단한 연예인이 되어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한 나를 상상한다... 반짝이는 조명과 카메라. 호호...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전 국민이 제 발톱 때까지 궁금해 한답니다! 이런 망상을 하며 정성껏 답했다. 내가 나한테 질문하지 않으면 평생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들인데 그 때 하길..
개취로 전시 재밌게 보는 법 1. 대충 보기: 시각적으로 매력 있는 작품만 본다. - 주의: 써 있는 글을 읽고 싶어도 참는다. 읽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 재료나 소재 중에 본인 취향인 게 있는지 본다. 나는 식물, 동물, 로봇청소기가 있으면 달려가서 그것부터 본다. 귀여우니까. - 눈 시리게 선명한 색감, 뭔진 몰라도 하튼간 큰일 났다 싶은 것, 뭔진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도 본다. 멋져 보이는 게 하나도 없고 지루하다고? 그럼 다음 단계로 2. 졸렬한 감상법: 얼굴을 최대한 가까이 들이대고 마감한 디테일만 본다. - 제작하기 곤란했을 것 같은 부분에 집중해서 본다. 모서리, 겹치는 부분, 오타, 서명, 작은 땜빵, 애매한 것들을 찾는다. 며칠 전에 본 바바라 크루거의 스펙타클 오지는 시트지 작품도 가까이서 ..